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영릉의병 요새 및 주둔지-희암마을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기타(마을) |
| 상태 | 일부 변형되었으나, 집희암과 덕후루는 그대로 남아있다. |
| 정의 | 신돌석이 의진을 이끌고 여러 차례 주둔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영릉의병(寧陵義兵) |
| 관련 인물 | 신돌석(申乭石) |
| 관련 내용 |
영해에서 서쪽으로 5㎞ 떨어진 창수면 소재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12㎞ 정도 가면 삼계리(三溪里)가 있는데, 이곳에서 우측 북쪽 길로 4㎞ 떨어진 골짜기가 바로 희암곡(喜庵谷)이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박의장(朴毅長)의 재실 건물이 있는데, 그 이름이 집희암(集喜庵)이다. 희암곡은 신돌석의 주요 주둔지 가운데 한 곳이었다. 그는 1906년 후반기부터 의병을 이끌고 이곳에 여러 차례 주둔하였다. 1908년 4월 22일에는 280명의 의병을 이끌고 이곳 희암곡에 주둔하면서 주변마을에서 의병과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해 5월17일에도 이 일대에서 활약하다가, 정보수집을 위해 파견된 일제 경찰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신장군실기」에는 "1908년 음력 9월에도 본부 희암동에서 여러 날 싸웠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신돌석은 의병들을 이끌고 이곳에 여러차례 주둔하였는데, 토벌대가 쉽사리 공격해 오지 못하는 천험의 요새였다. 당시 신문은 "영양군 일월산에 의병이 주둔하고 있는데, 산과 고개가 험준하고 골이 깊어서 100여 리에 사람을 찾아볼 수 없으니, 상세히 탐지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의병의 무리가 더욱 증가하여 여러 곳으로 나뉘다가 다시 산속으로 돌아 들어가므로 더욱 곤란하다"라고 보도하였다. |
| 참고 문헌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3-의병항쟁사, 1983, 413쪽. ○ 국사편찬위원회 편, 「폭도에 관한 편책」, 『한국독립운동사자료』 9-의병편 2, 139-131‧162쪽. ○ 김희곤, 『신돌석 백년만의 귀향』, 푸른역사, 2001, 109-111, 170-171쪽. ○ 강윤정, 『시대를 뛰어넘은 평민의병장 신돌석』, 독립기념관, 2016, 145-15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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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 희암골 |
|---|---|
| 주소 | 경북 영덕군 창수면 숯골4길 248 덕후루 일대 (수리 457 집희암)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폭도에 관한 편책」과 「신장군실기」에 관련 역사적 사실이 있으며, 희암곡은 현재도 지명이 그대로 쓰이고 있다. 또 박의장(朴毅長)의 재실 건물인 집희암(集喜庵)도 그대로 남아있어, 위치를 확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