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엄순봉 생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해외 독립운동가 |
| 종류 | 집터 |
| 상태 | 엄순봉의 집은 없어지고, 빈 터만 남아있다. 그 빈터에 <독립투사 엄순봉의사 생가지> 표지석을 세워 두었다. |
| 정의 | 아나키스트로 상해에서 의열투쟁을 전개한 엄순봉이 태어난 집이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육삼정 의거, 옥관빈 처단, 이용로 처단 |
|---|---|
| 관련 조직 |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 흑색공포단) |
| 관련 인물 | 엄순봉(嚴舜奉, 嚴亨淳), 이규호 |
| 관련 내용 |
엄순봉(嚴舜奉, 1906-1938)은 경북 영양 출신이며, 다른 이름은 엄형순(嚴亨淳)이다. 만주로 망명하여 1929년 7월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에 참여하였다. 이 연맹은 신민부 군정파 인사들과 함께 1929년 7월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를 결성하여 농촌자치조직을 만들고 교육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930년 김좌진(金佐鎭)과 김종진(金宗鎭)이 암살되고, 이을규(李乙奎)가 체포되면서 이 조직은 무너졌다. 한족총연합회가 무너지자 엄순봉은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상해로 향했다. 상해 남상(南翔)에 도착한 그는 입달학원(立達學院)에서 아나키즘에 대한 이론을 심화시켜 갔다. 이어 상해 프랑스조계에 온 후 1932년 12월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가입하였다. 이 연맹은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과 함께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였다. 흑색공포단(BTP)이라 불리기도 했던 이 단체는 일제 통치기구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였다. 1932년 무등(武藤) 암살기도, 1933년 육삼정(六三亭) 의거와 친일파 옥관빈(玉觀彬) 처단, 1935년 이용로(李容魯) 처단이 그 대표적인 활동이다. 이 가운데 이용로 처단은 엄순봉이 주도한 의거였다. 1935년 3월 25일 이른 아침 엄순봉은 이규호(李圭虎)와 함께 이용로를 처단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체포된 엄순봉은 1938년 4월 9일 사형으로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11-의열투쟁사자료집, 1983, 837-844쪽. ○ 김희곤 외, 『영양의 독립운동사』, 영양문화원, 2006, 336쪽. ○ 『동아일보』, 1935년 5월 31일, 2면 1단, 「上海 暗殺事件 兩犯人」. 『동아일보』, 1936년 2월 5일, 2면 1단, 「上海民會長 射殺한 엄순봉(嚴舜奉) 等 公判」. ○ 「엄순봉 등 판결문」, 경성복심법원, 1936년 4월 24일. 「일제경찰 신문조서」, 독립기념관 소장.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대천동 962 |
|---|---|
| 주소 | 경북 영양군 영양읍 대천리 94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엄순봉 등 판결문」에 관련 사실과 사적지 주소가 기록되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