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만도 묘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자정순국 |
| 종류 | 묘소 |
| 상태 | 묘소는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 아들 이동흠과 며느리 김락의 묘소도 같은 곳에 있다. |
| 정의 | 의병장이자 1910년 단식 순국한 향산 이만도와 아들 내외인 이중업‧김락 및 손자 이동흠의 묘소가 있는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을미사변(乙未事變), 단발령(斷髮令), 을사늑약(乙巳勒約), 경술국치(庚戌國恥)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이만도(李晩燾), 이중업(李中業), 김락(金洛), 이동흠(李棟欽) |
| 관련 내용 |
이만도는 1895년 12월 을미의병이 일어날 때, 예안의병을 일으키고 의병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단식 순국하였다. 그의 자정순국 과정은 재종손 이강호(李綱鎬)가 기록한 『청구일기(靑邱日記)』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뜻을 아들 이중업이 이어갔다. 이중업은 부친과 함께 예안의병에 참여하였으며, 1919년 ‘파리장서의거’를 이끌었다. 1920년 11월부터 중국의 손문과 오패부에게 독립청원서를 보내려고 노력하다가 출국 직전에 사망하였다. 며느리 김락은 1919년 3월 안동지역에서 일어난 3.1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 두 눈을 잃었다. 손자 이동흠은 광복회에서 활약하였으며, 이종흠은 2차 유림단의거에 참여하였다. 『향산집(響山集)』 부록(附錄), 「가전(家傳)」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순국하자 처음 강정산(江亭山)에 장지를 썼고, 임자년(1912) 9월에 부친 통덕랑공(이휘철)의 묘소(봉화 재산 명동(明洞)의 현재 위치) 아래에 이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
| 참고 문헌 |
○ 이만도, 「가전」, 『향산전서』 하, 한국국학진흥원, 2007. ○ 송상도, 『기려수필』, 국사편찬위원회, 1955, 175-179쪽. ○ 박민영, 『거룩한 순국지사 향산 이만도』, 지식산업사, 2010, 140-143쪽. ○ 강윤정, 『사적에서 만나는 안동독립운동』, 지식산업사, 2113, 121-13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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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
|---|---|
| 주소 | 경북 봉화군 재산면 동면리 산121-2 바드실골짜기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묘소 앞에 이만도의 묘소임을 알려주는 묘비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