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내성장터 3·1운동 준비지 및 봉화청년회 결성지-내성공립보통학교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학교 자리는 그대로이나, 옛 건물은 없어지고 학교를 새로 지었다. |
| 정의 | 1919년 3월 18일 내성장터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준비된 곳이자, 봉화청년회가 결성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3.1운동, 봉화청년회 창립총회 |
|---|---|
| 관련 조직 | 봉화청년회(奉化靑年會), 봉화청년동맹(奉化靑年同盟) |
| 관련 인물 | 이육상(李陸相), 이구락(李龜洛), 권인환(權麟煥) 등 |
| 관련 내용 |
내성공립보통학교(乃城公立普通學校)는 1919년 3월 18일 내성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 계획・준비된 곳이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촉탁교사(囑託敎師) 이육상(李陸相)과 졸업반 학생인 이구락(李龜洛), 3학년 권인환(權麟煥) 등이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16일 밤, 학교 기숙사에 3·4학년 학생들을 모아놓고 만세시위 계획을 설명한 뒤, 숙직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 66매를 제작하였다. 이어 다음날 학생들에게 18일 내성 장날에 있을 시위계획을 전하고,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 20장을 만들었다. 3월 18일 정오, 내성시장 안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자 이육상과 학생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며 군중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펼쳤다. 그 이듬해 1920년 7월 3일 이곳에서 봉화청년회가 결성되었다. 이날 창립총회에는 20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하였고, 1,000여 원의 의연금이 모였다. 그 뒤 봉화청년회는 순회강연단을 파견하여 청년들과 농민들의 계몽에 힘썼으며, 지회 조직에 힘써 춘양과 상운지역에 지회가 설치되었다. 이후 청년운동의 통일 방침에 따라 1927년 하순 봉화청년회는 봉화청년동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내성공립보통학교는 1941년 봉화공립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 |
| 참고 문헌 |
○ 김희곤 외, 『봉화의 독립운동사』, 봉화군, 2007, 245쪽. ○ 경상북도경찰부, 『고등경찰요사』, 1934, 40쪽. ○ 『매일신보』, 1919년 3월 14일, 「봉화보통학교가 선두」. 『동아일보』, 1920년 7월 19일, 4면 4단, 「奉化靑年會創立」. ○ 「이육상 등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1919년 3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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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봉화군 내성면 내성공립보통학교 |
|---|---|
| 주소 |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로7길 3 봉화초등학교 (내성리 252-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관련 역사적 사실은 「이육상 등 판결문과 『매일신보』 1919년 3월 14일자, 『동아일보』 1920년 7월 19일자에 기록되어 있다. 위치는 「봉화초등학교 연혁지」를 근거로 확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