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예천무명당 결성지-김기석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주의 독립운동 |
| 종류 | 집터 |
| 상태 | 옛 건물은 없어지고, 현재 다른 집이 있다. |
| 정의 | 1932년 9월부터 김기석의 집에서 예천무명당 지도부와 직업별 면별 세포조직이 결성됨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예천무명당 결성 |
|---|---|
| 관련 조직 | 예천무명당(醴泉無名黨) |
| 관련 인물 | 한일청(韓一淸), 김기석(金己石), 박창호(朴昌鎬), 윤우식(尹雨植), 이홍기(李洪起), 황창섭(黃昌燮) |
| 관련 내용 |
예천무명당은 1932년 11월 한일청(韓一淸)의 제의로 김기석(金己石)의 집에서 박창호(朴昌鎬)·황창섭(黃昌燮)·윤우식(尹雨植)·이홍기(李洪起) 등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이들은 조선공산당 재건과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대중운동의 성격을 갖는 지도부그룹에 서무부·조직부·선전부·자금부를 두고 예천지역 사회운동을 주도하였다. 1933년 9월 한일청·김기석·박창호 등이 조직 확대를 위해 각 면에 세포그룹을 구성하였다. 이때 김기석은 선전부를 맡아 예천읍 조직 확대책임자로 직업별 각 면별 조직을 완성하고, 또한 독서회를 개최하여 사회과학연구와 공산주의 이론을 습득토록 하였다. 예천무명당은 이 조직을 통해 일제의 지방 지배기구와 농촌 지배기구인 우편소·역·학교·수리조합·금융공사·사방공사 등을 역이용하여 대중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투쟁을 전개하면서 대중들에게 계급의식을 고양시키고 조선공산당대회에서 채택된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방침을 따랐다. 그러나 운동은 1934년 한 면서기의 공금횡령사건을 취조하던 일제 관헌에 의해 조직이 발각되어 운동의 전모가 드러나 좌절되고 말았다. 예천무명당은 1930년대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과 검거로 침체에 빠진 조선의 독립과 공산당을 재건하려는 국내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의 한 단면으로 예천 사회주의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이루었다. |
| 참고 문헌 |
○ 김시우, 『예천의 독립운동사』, 예천문화원, 2010, 303-307쪽. ○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편, 『경북독립운동사』 Ⅴ-1920~40년대 국내항일운동, 경상북도, 2014, 406-410쪽. ○ 강윤정, 「예천무명당의 조공재건운동」, 『안동사학』 9·10, 안동사학회, 495-516쪽. ○ 『동아일보』, 1934년 7월 24일 호외, 「醴泉共黨을 組織」. 『동아일보』, 1934년 12월 28일, 2면 4단, 「醴泉 共産黨 終豫」. ○ 「김기석 판결문」, 대구지방법원형사부, 1935년 5월 10일.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면 백전동 187 |
|---|---|
| 주소 | 경북 예천군 예천읍 흑응로 106 (백전리 18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있으며, 판결문에 기재된 당시 주소와 현재 지번을 비교하여 위치를 확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