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연합의병 예천회맹지-한천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산야 |
| 상태 |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만 현재도 하천이 남아있다. |
| 정의 | 1896년 3월 23일 7읍 연합의병이 상주 태봉의 일본군을 공격하기 전 회맹의식을 가졌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연합의병 예천회맹 |
|---|---|
| 관련 조직 | 안동의병(安東義兵), 호좌의병(湖左義秉), 영주의병(榮州義兵), 순흥의병(順興義兵), 선성의병(宣城義兵), 풍기의병(豊基義兵), 봉화의병(奉化義兵) |
| 관련 인물 | 김도현(金道鉉), 서상렬(徐相烈) |
| 관련 내용 |
안동·풍기·순흥·영주·봉화·선성·호좌의병은 3월 22일 예천으로 집결하였다. 이들 7읍 연합의병은 예천의 한천에서 백마를 잡아 회맹의식을 가졌다. 이어 24일 예천군수 유인형을 처형하였다. 3월 28일 용궁을 거쳐 산양에 도착한 7읍 연합의병은 밤을 틈타 태봉으로 진격하였다. 연합의병은 공격을 위해 주변 지역에 분산하였는데, 안동의진은 덕통역(德通驛), 호좌의병은 함창, 영주·순흥·선성의진은 포내촌(浦內村), 풍기의병은 당교, 봉화의병은 동산촌(東山村)에 각각 머물렀다. 3월 29일 아침 의병은 공격을 시작하였다. 김도현(金道鉉)은 「창의전말」에서 당시의 전투상황을 "태봉을 향해 가는데, 한 기다란 시내가 있고 커다란 들이 나 있다. 혹 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기도 하고, 혹 길을 물어 후군을 기다리기도 한다. 오직 선성의병이 앞에 섰고, 풍기·영주·순흥 3진은 뒤에 따라 들을 덮고 나간다."고 기록하였다. 아침부터 시작된 전투는 저녁 무렵 일본군의 총공격으로 연합의병의 패배로 끝났다. |
| 참고 문헌 |
○ 김병하, 「自行錄」, 『不自棄文』. ○ 박주대, 『저상일월』, 1896년 2월 10일. ○ 김정섭, 『일록』, 1896년 2월 10일. ○ 안동독립운동기념관 편, 『국역 경북지역 의병자료』, 선인, 2012, 87쪽. ○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편, 『경북독립운동사』 Ⅰ-의병항쟁, 경상북도, 2012, 137-139쪽. ○ 권대웅, 「乙未義兵期 慶北 北部地域의 禮泉會盟」, 『민족문화논총』 14, 영남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93, 71-73쪽. 구완회, 「을미의병기 호좌의진과 영남 의진의 연대와 태봉전투」, 『국학연구』 24, 한국국학진흥원, 2014, 33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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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 한천 |
|---|---|
| 주소 | 경북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479체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박주대, 『저상일월』,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한천은 현재도 그 지명이 남아있다. 다만 범위가 넓어 한천체육관 일대를 중심 위치로 비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