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영역

  • 지역별
  • 운동별

사적지 찾아보기

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부산항 - 부두노동자 파업투쟁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이 지역은 상선회사와 하역회사들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창고들이 남아있다. 도로가 넓어져 예전과 같지는 않지만 제1잔교가 제1부두자리이다.
정의 1921년 9월 부산부두노동자 5,000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전개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21.9 부산부두노동자총파업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조동혁(趙東赫)
관련 내용 부산부두노동자 총파업은 1921년 9월 부두노동자 조동혁 등 5,000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단행한 사건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불경기를 구실로 임금인하를 단행한 하역업자들의 조치에 대항해 임금인하에 반대하고 임금인상을 요구한 투쟁이었다.

1921년 1월 택산(澤山)형제상회·내국상선만철회사·일본상선회사 등이 예고 없이 3할의 임금인하를 단행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노동자의 요구를 무시하였다. 9월 초 참다 못한 석탄운반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했으나 사용자측이 이를 묵살하면서 파업이 발생했다. 파업이 시작되자 경찰은 비상경계망을 펴 주동자를 체포하고 집회를 방해했으며 운송업자들도 경찰의 힘을 믿고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10여 일 이상 파업이 계속돼 부산항이 화물수송이 마비되는 등 전 산업에 큰 타격을 주자 결국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1할의 임금인상이 되었다. 부산부두노동자파업은 일제의 폭압 통치와 사용자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한국노동운동의 서막을 연 투쟁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문헌 木谷佐一,「大日本職業別明細圖 194호 ; 朝鮮南部」, 1930.
『동아일보』, 1921년 9월 22일,「부산노동자의 파업, 석탄운반부 천명은 파업, 부두인부 이천명은 교섭 중」.
『동아일보』, 1921년 10월 1일,「三十日도 繼續罷業, 대구에서 육십명의 노동자를 임시로 다려다가 화물을 운반」.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4, 1978, 115쪽.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부산부 대창정
주소 부산 중구 중앙동 4가~5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동아일보』1921년 9월 22일자 기사를 통해 관련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대일본직업별명세도」를 통해 위치를 비정할 수 있다.

하단영역

관련사이트

주소: 31232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1  전화: 041-560-0405 팩스 : 041-560-0426 
 Copyright 2021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