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천세헌 생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해외 독립운동가 |
| 종류 | 집터 |
| 상태 | 천세헌의 집은 없어지고, 현재 다른 주택이 있다. |
| 정의 | 미주지역 흥사단·대한인국민회 등에 가입하여 활동한 천세헌이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흥사단(興士團),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大韓人國民會 北美地方總會),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朝鮮義勇隊美洲後援會) |
| 관련 인물 | 천세헌(千世憲), 안창호(安昌浩), 강영승(康永昇) |
| 관련 내용 |
천세헌(千世憲, 1881-1945)은 경북 문경 출신이다. 1902년 서울에서 외국어학교에 다녔으며, 1903년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1910년 다시 뉴욕으로 옮겨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북미지방총회(北美地方總會) 뉴욕지회에 가입하였다. 1914년에는 흥사단(興士團)에서 활동하였으며, 1917년에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뉴욕지방총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919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 자유한인대회(自由韓人大會)가 열리자 여기에 참가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후원, 외교사무소 설치 등을 결의하였다. 그 뒤 서재필(徐載弼) 등과 함께 뉴욕에서 대한민족대표단(大韓民族代表團) 후원회를 조직하고, 특연금을 모집하였다. 1922년 대한민족대표단의 일원으로 중국 상해로 파견된 그는 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를 조직하고, 임시정부 발전에 노력하였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1940년 7월 강영승(康永昇)과 함께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시카고지방지회를 설립하였다. 1942년부터는 각종 독립금과 기성금을 출연하여 조국의 독립전쟁을 후원하는 등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1945년 6월 서거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 김희곤 외, 『문경의 의병과 독립운동사 연구』, 문경문화원, 2009, 41쪽. ○ 도산안창호선생전집편찬위원회, 「천세헌 이력서」, 『도산안창호전집』 10,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0, 783쪽. ○ 천세헌 부부 ○ 「천세헌 자기소개서」, 독립기념관 소장. 「천세헌 대한인국민회 입회증서」, 독립기념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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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상주군 산양면 부암리 |
|---|---|
| 주소 | 경북 문경시 산양면 부암길 39-40 (부암리 39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천세헌 자기소개서」와 「천세헌 이력서」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신양면 부암리에 살고 있는 족친 천동철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