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문경의병 창의지-도태장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기타(시장) |
| 상태 | 도태장터는 현재 논으로 변한 상태이다. 사적지 주변에 도태장터 이강년의병 창의와 관련된 안내판(운강이강년과 도태리)이 세워져 있다. |
| 정의 | 1896년 2월 23일 운강 이강년이 의병을 창의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문경의병(聞慶義兵) |
| 관련 인물 | 이강년(李康秊) |
| 관련 내용 |
운강 이강년(李康秊, 1958-1908)은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침입(갑오변란)이 있자, 이에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를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이어 1년 뒤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있고, 전국에서 의병 창의가 이어지자, 이강년도 의병이 되고자 하였다. 우선 그는 안동으로 가서 권세연을 돕고자 하였다. 그러나 권세연이 이끄는 안동의병이 한 차례 무너지자, 그는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문경으로 돌아온 이강년은 1896년 2월 23일(음 1.11) 도태(道胎)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 직접 의병을 창의하였다. 도태장터는 자신이 나고 자란 가은읍 상괴1리에에 위치하였다. 먼저 이강년은 이곳에서 산포수와 농민 60여 명을 규합하고, 왕능장터로 나아가 300여 명의 의병을 모았다. 그 뒤 1896년 5월 25일(음) 제천이 관군의 손에 넘어갈 때까지 항전을 이어가던 이강년은 1907년 다시 의병을 일으킬 때까지 후학 양성에 힘썼다. |
| 참고 문헌 |
○ 박정수·강순희, 『창의사실기』, 1916. ○ 내제문화연구회, 「운강선생창의일록」, 『운강집』 전, 2007, 347-348쪽. ○ 박정수·강순희 편, 구완회 역, 『국역 창의사실기』, 세명대 지역문화연구소, 2014. ○ 구완회, 『영원한 의병장 운강 이강년』, 지식산업사, 2015, 178-181쪽. ○ 박민영, 『의병전쟁의 선봉장 이강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5, 207쪽. ○ 정제우, 『구한말 의병장 이강년연구』, 인하대박사학위논문, 1992. 송재엽, 「상주에 영면한 항일의병장 운강이강년과 광복의사단」, 『상주문화』 11, 상주문화원, 2001, 197-256쪽. ○ 이강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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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도태마을 |
|---|---|
| 주소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상괴리 841답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선행연구와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확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