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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강년의병 전투지-마고성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상태 고모산성은 훼손이 심하였으나, 문경시에서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다.
정의 1896년 이강년이 이끄는 500여 명의 의병이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전투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문경의병 전투지 
관련 조직 문경의병(聞慶義兵), 안동의병(安東義兵), 호좌의병(湖左義兵) 
관련 인물 이강년(李康秊), 권세연(權世淵), 류인석(柳麟錫), 심거벽(沈巨擘)
관련 내용 이강년(李康秊, 1958-1908)은 1896년 1월 11일(음력) 도태(道胎)장터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 충주에 주둔하고 있던 류인석(柳麟錫)에게 원군을 요청하였다. 류인석은 여기에 응하여 병사를 보내준다는 답서를 보내왔다. 이에 이강년은 500여 명의 군사를 뽑아 모곡(茅谷)에 주둔하면서 류인석의 병사들을 기다리다가 석현의 마고성(麻姑城)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1월 15일(양력 2월 27일) 이른 아침 갑자기 일본군이 들이닥쳤다.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전투가 이어졌으나 문경의병은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화약과 탄환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적을 만났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지른 불로 말미암아 성문과 마을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고, 포수 심거벽(沈巨擘)이 탄환에 맞아 전사하였다. 마고성 전투에서 패한 이강년은 다시 안동의병 대장 권세연(權世淵)을 찾아가 작전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안동의병도 전열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1월 29일 제천으로 가서 류인석이 이끄는 호좌의병에 합류하였다.

1907년 7월 일제가 강제로 군대를 해산시키자 이강년은 다시 제천에서 창의하였다. 제천과 충주를 거쳐 9월 문경으로 진군한 이강년은, 신원(마성면 신현리)에 지휘소를 두고 고모산성에 방어진을 설치하였다. 이후 약 일주일 동안 문경새재·갈평·동로·적성에서 전투를 벌였다. 갈평에서는 일본군 1개 소대를 괴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참고 문헌 ○ 『운강선생창의일록』(목판본), 1948.
○ 『운강선생문집』(목판본), 1949.
○ 『국역 운강이강년전집』, 청권사, 1993.
○ 박정수·강순희 편, 구완회 역, 『국역 창의사실기』, 세명대학교 지역문화연구소, 2014.
○ 구완회, 『영원한 의병장 운강 이강년』, 지식산업사, 2015, 178-181쪽.
○ 박민영, 『의병전쟁의 선봉장 이강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5, 207쪽. 
○ 정제우, 『구한말 의병장 이강년연구』, 인하대박사학위논문, 1992.
송재엽, 「상주에 영면한 항일의병장 운강이강년과 광복의사단」, 『상주문화』 11, 상주문화원, 2001, 197-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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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문경군 석현 마고성
주소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30-3 (고모산성 일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독립운동사자료집』 1집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마고성은 현재 문경시에서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진남루 안에 표지판도 있어 위치를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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