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만도 순국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자정순국 |
| 종류 | 집터 |
| 상태 | 집은 멸실되고 1948년 9월 1일 건립한 <향산 이선생 순구유허비>가 있다. 그리고 2006년 예안면에서 <향산공원>을 조성하였다. |
| 정의 | 1910년 10월 향산 이만도가 단식 순국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을미사변, 단발령, 을사늑약, 대한제국 멸망 |
|---|---|
| 관련 조직 | 예안의병(禮安義兵) |
| 관련 인물 | 이만도(李晩燾), 이만규(李晩煃), 이중업(李中業), 이강호(李綱鎬) |
| 관련 내용 |
이만도(李晩燾, 1842-1910)는 경북 안동출신이다. 1866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정언·응교·중학교수·양산군수를 역임하고, 1882년 동부승지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895년 12월 을미의병이 일어날 때, 예안의병을 일으키고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항거하는 상소를 올렸다. 의병항쟁과 상소운동을 펼쳤던 이만도는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단식을 시작하였다. 이는 ‘적의 백성’으로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철저한 의리론적(義理論的) 대응이었다. 그가 처음 단식을 시작한 곳은 봉화 재산의 묘막이었으나 동생 이만규(李晩煃), 아들 이중업(李中業), 종손 이강호(李綱鎬)의 간청으로 종가인 율리(栗里) 만화공(晩花公)댁으로 자리를 옮겼다. 단식 과정에서 일본 경찰이 강제로 미음을 떠먹이려 하자, 그는 "누가 감히 나를 회유하고 협박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1910년 10월 10일(음 9. 8) 단식 24일 만에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 이만도, 『향산전서』, 한국국학진흥원, 2007. ○ 이강호, 『청구일기』. ○ 송상도, 『기려수필』, 국사편찬위원회, 1955, 175-179쪽. ○ 박민영, 『거룩한 순국지사 향산 이만도』, 지식산업사, 2010, 109쪽. ○ 강윤정, 『사적에서 만나는 안동독립운동』, 지식산업사, 2013, 121-13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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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예안군 인계동 율리 만화공댁 |
|---|---|
| 주소 | 경북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 736-1 (인계리 736-1, 738전 향산공원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향산전서』와 『기려수필』에 관련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순국지에 1948년 9월 1일 건립한 <이만도선생 유허비>에 그 내용이 있어 위치를 확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