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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안동농림학교 항일운동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학생운동
종류 건물
상태 안동농림학교는 다른 곳으로 옮겨갔으며, 옛 건물도 없어졌다. 현재 그 자리에는 복주여자중학교가 들어서 있다.
정의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명성회와 조선회복연구단이 활동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명성회 조직(1943년), 조선회복연구단 결성(1943년 10월)
관련 조직 명성회(明星會: 혹은 黎明會), 조선회복연구단 
관련 인물 권영동(權寧東), 김우현(金佑鉉), 손성한(孫聖漢), 이갑룡(李甲龍), 이승태(李承台), 이정선(李貞善), 이준택(李準澤), 장인덕(張仁德), 황병기(黃炳基)
관련 내용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비밀결사 명성회(明星會: 혹은 黎明會)와 조선회복연구단을 조직하고 항일운동을 펼쳤다. 명성회는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안동농림학교에서 퇴학된 이정선(李貞善)이 일본에서 돌아와 9회생 동기들을 규합하여 1943년에 만든 비밀결사이다. 문예써클의 성격을 띤 명성회는 『여명(黎明)』이라는 교양잡지를 발간하고, 역사서·사상서 등을 탐독하면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조선회복연구단은 안동농림학교 8·9회생이던 권영동(權寧東)·황병기(黃炳基)·이준택(李準澤)·이갑룡(李甲龍)·장인덕(張仁德)·김우현(金佑鉉)·이승태(李承台) 등이 1943년 10월 결성하였다. 여기에는 안동의 지도층 인사들이 참여하였는데 1944년 방학 무렵에는 단원이 51명에 이르렀다.

명성회와 조선회복연구단은 1944년 10월 연대를 모색하였다. 두 단체의 연합은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안동경찰서를 기습 공격하고, 무기를 확보하여 항쟁을 벌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학교 무기고에 있는 총으로 안동경찰서와 안동헌병대를 기습·점령하여 일본인을 제압하고, 나아가 철도와 통신망을 파괴한 뒤 의성(義城)지역으로 진격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그러나 1945년 2월초 일제 경찰이 이 계획을 알아내고, 관련자를 검거하기 시작했다. 1945년 3월 64명이 체포되어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손성한(孫聖漢)은 순국하였다. 관련자 대부분이 옥고를 치르다 광복과 함께 풀려났다.
참고 문헌 ○ 김을동, 『안동판독립사』, 명문사, 1985, 329-332쪽.
○ 편찬위원회, 『안동생명과학고 70년사』, 동창회, 생명과학고등학교, 2003, 17·19·66-69쪽.
○ 김희곤, 『안동 사람들의 항일투쟁』, 지식산업사, 2007, 500-501쪽. 
○ 신승훈, 「해방직전(1943-45)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연구」, 『안동사학』 12, 안동사학회, 2007, 157-199쪽.
○ 『동아일보』, 1934년 12월 13일, 3면 1단, 「安東農林校 今年內竣工」.
『동아일보』, 1934년 12월 16일, 5면 1단, 「新築落成된 安東農林校」.
○ 조선회복연구단 출옥 기념사진(1945.08.18.).
병자 대홍수 당시 물에 잠긴 안동농림학교 전경(1936), 『안동생명과학고 70년사』 17쪽.
해방직후 안동농림학교의 전경, 『안동생명과학고 70년사』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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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안동군 안동면 안동공립농림학교
주소 경북 안동시  안기천로 58 복주여자중학교 일대 (당북동 333-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관련 사실은 『안동판독립사』에 기록되어 있다. 위치는 『안동생명과학고 70년사』와 안동농림학교출신 김시덕의 증언을 종합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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