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노병대의병 주둔지-청계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1907년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1924년 본래 위치에서 앞으로 이동하여 새로 세워졌다. |
| 정의 | 1907년 일어난 노병대 의병부대가 주둔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노병대 의병부대(盧柄大義兵部隊) |
| 관련 인물 | 노병대(盧柄大), 김운로(金雲老), 송창헌(宋昌憲), 임용헌(林容憲) |
| 관련 내용 |
청계사(淸溪寺)는 신라말기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1907년 노병대・김운로가 이끄는 의병이 주둔하였으나, 일본군의 방화로 완전히 전소되었다. 1924년 현재의 위치에 관음전과 요사 2동을 세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있자, 노병대(盧柄大, 炳稷, 1956-1913)는 이강년 의병의 좌종사佐從事가 되어 의병항쟁을 시작하였다. 이어 1907년 8월 군대 해산 후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노병대도 8월 20일(음력 7월 13일) 경기도 광주의 전 주사 임용헌(林容憲), 충남 연산의 김운로(金雲老)·송창헌(宋昌憲) 등과 함께 속리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군세가 강해지자 김운로를 맹주로 추대하고, 곧 공격에 나섰다. 우선 보은군을 공격하여 일본인 2명을 사로잡았다. 이어 상주 청계사로 부대를 옮겼으나 적병의 급습을 받고, 다시 청주 미원米院으로 물러났다. 그 뒤 노병대는경북 상주, 경남 거창·안의, 전북 무주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1908년 6월 15일(음력) 충북 보은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
| 참고 문헌 |
○ 송상도, 『기려수필』, 국사편찬위원회, 1955, 130쪽.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3-의병항쟁사자료집, 1983, 698쪽. ○ 『황성신문』, 1907년 11월 21일, 2면 5단, 「義徒에 攸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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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상주군 화서면 청계사 |
|---|---|
| 주소 | 경북 상주시 화서면 하송3길 213 청계사 (하송리 310-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기려수필』과 『독립운동사자료집』 3집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노병대의 손자 노진영(68세)의 증언, 또 청계사 안내문에 그와 관련 사실이 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