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다물단 군자금 모금지-거연정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민족주의 독립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현재 거연정은 복원되었다. |
| 정의 | 다물단(多勿團)의 군자금 모금지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다물단(多勿團) |
| 관련 인물 | 윤영섭(尹瑛燮), 윤병일(尹炳馹), 윤병채(尹炳采), 서동일(徐東日), 최성희(崔聖熙) |
| 관련 내용 |
윤영섭(尹瑛燮, 1865~1946)은 청도군 운문면 공암동 746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예안군수를 역임한 그는 국민당에서 활동한 윤병채(尹炳采)의 스승이다. 1924년 1월 경 서동일(徐東日)의 군자금 모금을 돕고, 자신의 별장 거연정을 동지 규합과 군자금 모집의 지회소로 제공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일제경찰에 붙들렸지만 무죄로 풀려났다. 윤병일(尹炳馹, 1898~1974)은 청도군 운문명 공암리 73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24년 1월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거연정에서 서동일을 만나 국민당에 가입하였으며, 1925년 1월에도 같은 장소에서 서동일과 협의하다가 붙잡혔다. 1925년 1월 서동일은 다시 국내로 파견되었다. 이번에는 특파원 신임장과 함께 많은 금액을 제공한 사람에게 줄 다액 출금자 표장 휘장(表彰徽章) 2장을 지녔다. 그는 1925년 1월 8일 청도군 운문면 윤영섭을 방문하고, 거연정에서 윤병채·윤병일 등과 다시 군자금을 모금 계획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이여심의 집에 식객으로 출입하고 있는 3.1독립운동 참여자 최성희를 거연정으로 불러 군자금 제공을 권했다. 군자금 제공 증서로 표창 휘장 1개를 주고 최성희와 윤병채를 통해서 재차 이여심에게 권유하여 현금 30원을 제공받고 북경으로 돌아갔다. 1925년 봄 다물단의 선언서와 특파원 신임장 각 1장씩을 지닌 그는 5월 22일 북경을 출발하여 세 번째로 국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5월 28일 청도를 거쳐 경상북도 경산군 자인면에 도착해 그곳의 자산가 장재수(張在洙)·석제원(石濟元)·김윤근(金潤根) 등을 찾아 다물단 선언서를 보여주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 경산군 남산면(南山面) 경동리(慶洞里) 김상규(金相珪)의 차남 김두남(金斗南)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의 여비로 10원을 받은 일도 있었다. |
| 참고 문헌 |
○ 권대웅 외, 『청도의 독립운동사』, 청도군, 2010, 257-259쪽. ○ 경상북도경찰부, 『고등경찰요사』, 1934, 232-233쪽. ○ 『동아일보』, 1926년 4월 22일, 4면 1단, 「停刊中의 大邱(大邱 一記者)」. ○ 「윤병일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1925년 1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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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동 |
|---|---|
| 주소 | 경북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736 거연정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2018년 현장을 방문하였을 때 마을주민인 전태진(운문면 공암리)의 증언으로 현장을 확인하고 그 흔적을 조사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