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선왕당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산야 |
| 상태 | 선왕당산 중턱에 있는 선왕당은 2018년 현장을 방문하였을 때 풀이 무성하여 접근하기 어려웠다. |
| 정의 | 1919년 4월 3일 주민들이 일제 경찰에 항거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정두석(鄭斗石), 이송아(李松芽), 김남극(金南極), 김정수(金廷秀), 박봉현(朴鳳鉉), 서돌명(徐乭命), 양순오(楊順五), 이도지(李道支), 이돌수(李乭守), 이유근(李有斤), 정명근(鄭命根), 정한도(鄭汗度), 홍원표(洪元杓) |
| 관련 내용 |
화양면 송금리의 3.1운동은 1919년 4월 3일 정두석(鄭斗石)·이송아(李松芽) 등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송금리 선왕당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펼쳤다. 이때 일제 경찰은 재향군인들과 일본인 잡화상 거류민들을 동원하여 만세운동을 막으려 하였다. 이에 군중들은 잡화상을 점거하는 한편, 경찰과 일본 재향군인들과 싸우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선두에서 만세를 이끌던 16명이 일경에게 붙잡혔는데, 정두석·이도지(李道支) 등은 두 차례나 탈출을 감행하였다. 이송아는 징역 1년, 박봉현(朴鳳鉉)·김남극(金南極)·이돌수(李乭守)·양순오(楊順五)·이유근(李有斤)·김정수(金廷秀)·홍원표(洪元杓)·정명근(鄭命根)·서돌명(徐乭命)·정한도(鄭汗度) 등은 각 징역 6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
| 참고 문헌 |
○ 권대웅 외, 『청도의 독립운동사』, 청도군, 2010. ○ 권대웅, 「한말·일제초기 청도지역의 민족운동과 주도세력」, 『민족문화논총』 21,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0, 308쪽. ○ 「이송아 등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1919년 5월 8일. 「이송아 등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19년 6월 26일. 「이송아 집행원부」. 「이송아 집행원부」. 「이송아 형사사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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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송금동 선왕당산 |
|---|---|
| 주소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산60임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이송아 등 판결문」에 선왕당산 만세운동과 관련한 기록이 있으며, 2010년과 2018년 현장을 확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