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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법린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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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문화운동
종류 집터
상태 현재 새로운 가옥이 들어서 있다.
정의 불교계 민족지도자인 김법린이 태어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3.1운동, 조선어학회사건
관련 조직 은해사, 범어사, 중앙학림,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르본대학교, 조선어학회, 만당 
관련 인물 김법린(金法麟)
관련 내용 1899년 8월 23일 김법린은 아버지 김정택(김녕김씨 족보에는 김형상으로 기재)과 어머니 문소김씨(김악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호는 범산, 본명은 진린인데, 중국 망명 후 이름을 법린으로 바꾸었다. 15세(1913년)에 은해사로 출가했고 16세에 범어사로 승적을 옮겼다. 1917년 휘문의숙에 입학했다가 불교계 신식학교인 중앙학림으로 편입했다. 1919년 탑골공원 3.1운동에 참여하였고 부산에 내려가 김상헌과 함께 범어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중국 망명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다가 1920년 4월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파리대학교 부설 외국인학교와 파리 소르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28년 귀국한 후 불교계 잡지인 『불교』의 학술부를 담당했고 1929년 봄 조선어학회가 주관하는 조선어사전편찬회의 준비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30년 5월 일본 고마자와 대학교에 유학하던 중 만당을 결성하였다.
참고 문헌 ○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편, 『경북인물사전』, 경상북도, 2015, 194-195쪽.
○ 조인호 외, 『영천의 독립운동사』, 영천항일독립운동선양사업회, 2013, 373-375쪽.
○ 송진모, 「日帝下 金法麟의 佛敎革新論과 梵魚寺」, 부경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26쪽.
조준희, 「김법린의 민족의식 형성과 실천」, 『한국불교학』 53, 한국불교학회, 2009, 58-59쪽.
○ 「김법린 제적등본」.
「지적원도」, 완전동 4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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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영천군 신녕면 완전리
주소 경북 영천시  신녕면 완전3길 21 (완전리 763-15)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법린의 2남 김인봉은 김법린이 치산리에서 태어났으나 완전리에서 자랐다고 증언했고, 6촌 김수규는 완전리 763-15번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했으며, 「제적등본」에는 완전리 41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제적등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완전리 41번지는 현재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고, 6촌 김수규가 증언한 완전리 763-15번지는 가천양봉을 경영하고 있는 이방복의 증언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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