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서상교 생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학생운동 |
| 종류 | 집터 |
| 상태 | 새로운 가옥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42년 5월 결성된 대구공립상업학교 태극단에서 활동한 서상교가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학생 비밀결사 |
|---|---|
| 관련 조직 | 태극단(太極團) |
| 관련 인물 | 서상교(徐尙敎) |
| 관련 내용 |
서상교(徐尙敎, 1923~미상)는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1942년 5월에 동교생 김상길(金相吉)·이상호(李相虎) 등과 함께 항일학생결사 태극단(太極團)을 조직하였다. 그는 동지들과 일본군 입대반대 등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뿌리는 한편 동지규합 활동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 1943년 4월에 김정진(金正鎭)·이준윤(李浚允)·이원현(李元鉉)·윤삼룡(尹三龍) 등을 규합하였으며 계속해서 학교단위로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또 5월에는 단원 전원이 대구시 앞산인 비슬산(琵瑟山) 약수터에 모여 결단식을 가졌고, 여기에서 그는 체육국장의 일을 맡아 단원의 연성활동(鍊成活動)을 지도·감독하였다. 한편 태극단은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용두산(龍頭山).비슬산 등에서 학술연구토론회, 각종 체육회 등을 개최하여 동지간 유대의식과 민족적 교양의 함양 및 체력증강에 힘을 쏟았다. 더불어 군사학 연구에도 정진하여 군사관계 서적의 번역, 글라이더 및 폭발물 제조에 관한 연구도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는 1943년 5월 배반자의 밀고로 태극단의 조직과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학교에서 수업 도중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서상교는 1944년 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단기 5년, 장기 7년형을 언도받고 인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증언자료집』 1, 2002, 600쪽. ○ 조춘호, 『태극단학생독립운동』, 대구상업정보고등학교총동창회, 2001, 229쪽. ○ ○ 서상교 ○ 「서상교 수형인명부」(중구청사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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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대구부 남산정 407 |
|---|---|
| 주소 | 대구 중구 명륜로 13-20 (남산2동 407-1 2통 1반)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독립유공자증언자료집』 1권에 관련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1927년 「대구지적도」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