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문석봉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집터 |
| 상태 | 집이 새로 건축되어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
| 정의 | 1895년 공주에서 창의하여 1896년까지 의병항쟁을 펼쳤던 문석봉이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
|---|---|
| 관련 조직 | 유성의병, 제천의병 |
| 관련 인물 | 문석봉(文錫鳳) |
| 관련 내용 |
문석봉(文錫鳳, 1851~1896)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최초의 봉기를 이끈 의병장이다. 그는 1895년 2월 공주부(公州府) 영장(營將)으로 재직하면서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낼 것을 계획하고 관병 400여 명을 훈련시키다가 체포되어 4개월 넘게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895년 음력 9월 18일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 만행에 항거하여 충남 대덕군 유성의병을 일으켜, 회덕(懷德)으로 진군하여 군사를 모은 후 그곳 관아를 습격하였다. 이후 그는 진용을 정비하면서 선봉장에 김문주(金文柱), 중군장에 오형덕(吳亨德)을 임명하고, 진산(鎭山)을 거쳐 공주(公州)로 진군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음력 10월 28일 관군과 싸웠으나 패하여 의병은 해산되고 말았다. 그는 다시 중군장 오형덕 등과 함께 경북 고령(高靈)·초계(草溪) 등지에서 재봉기를 준비하였으나, 거의(擧義) 직전에 체포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구부(大邱府)에 압송된 문석봉은 심문하는 관찰사에게 맞서 의병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등 뜻을 굽히지 않았다. 1896년 봄 그는 오형덕과 함께 감옥을 탈출하여 강원도 원주(原州)에서 도지휘(都指揮)로서 각도 의병장들에게 통문을 발송하고, 제천의병(堤川義兵)의 류인석(柳麟錫) 의병장과 연계하여 의병항쟁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재거의(再擧義)를 계획하던 중 병을 얻어 4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 문석봉, 「행장」, 『의산유고』, 1934. ○ 권대웅, 『달성의 독립운동가 열전』, 민속원, 2017, 25-31쪽. ○ 김상기, 「조선말 문석봉의 유성의병」, 『역사학보』 134·135, 역사학회, 1992, 7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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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 상동리 |
|---|---|
| 주소 | 대구 달성군 현풍읍 성하길 68-7 (성하리 31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문석봉의 시문집 『의산유고』 「행장」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0년 전 증손자 문희찬의 증언을 통해 집터를 확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