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신간회 청주지회 사무실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건물이 없어지고 일반상점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27년 12월 22일 창립된 신간회 청주지회의 사무실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신간회/신간회 청주지회 |
| 관련 인물 | 신영우(申榮雨) |
| 관련 내용 |
신간회는 1927년 2월 15일 '민족 유일당 민족협동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제휴하여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이다. 신간회는 창립 이래 지회 설립에 나섰는데, 신간회 청주지회는 같은 해 12월 13일 신간회 본부로부터 설립 승인을 받았다. 신영우(申榮雨) 등 9인은 조선일보 청주지국에서 신간회 청주지회 발기준비회를 개최하고 지회 설립을 협의한 끝에 12월 22일 앵좌(櫻座)극장에서 설립대회를 개최하고 정식 출범했다. 청주지회의 사무실은 청주군 청주면 본정 1정목에 있는 조선일보 청주지국에 두었다. 신간회 청주지회는 1928년 일본인 교장의 한국민에 대한 모욕적 발언에 분개하여 동맹휴학을 벌인 청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학교와 경찰이 탄입하자 이에 항의하는 항의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지회는 간사회의 등을 통하여 활동방향을 논의하였는데, 주로 농민문제, 소년문제, 부녀자문제, 언론·출판·집회·결사자유의 획득, 치안유지법과 보안법 철폐, 민족본위 교육, 문맹퇴치 등을 다루었다. 그러나 창립대회 때 토의하기로 했던 의안 중 도내 각 군의 지회 설립 촉성, 청년과 농민문제, 재만동포 옹호문제 등은 일제에 의해 금지당하였고, 창립기념 강연회에 참석했던 청주고등보통학교와 청주농업학교 학생들이 학교 당국에 의해 강제로 퇴장당하는 등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신간회 청주지회는 다른 지회와 마찬가지로 1931년에 해소되었으나, 구성원들은 이후에도 항일투쟁의 구심축이 되어 투쟁을 지속해 나갔다. |
| 참고 문헌 |
『조선일보』, 1923년 5월 31일, 「사고 : 청주지국 위치변경」. 『동아일보』, 1927년 12월 25일, 「신간회 소식 : 청주지회 설립, 정기대회도 개최」. 『동아일보』, 1928년 12월 26일, 「청주 신간 간사회」. 『중외일보』, 1927년 12월 25일, 「신간 청주지회, 정기대회」. 청주시지편찬위원회, 『청주시지』 상, 청주시, 1997, 335쪽. 전순동, 「일제강점기 청주청년회의 활동과 그 의의」, 『인문학지』 제29집, 충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04, 70쪽. 충북역사문화연대, 『청주현대사지도』,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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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청주군 청주면 본정1정목 |
|---|---|
| 주소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 2가 78-20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 1927년 12월 25일자 및 『중외일보』 1927년 12월 25일자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신간회 청주지회 사무실은 조선일보 청주지국 내에 두었는데, 『조선일보』 1923년 5월 31일자에 의하면 청주지국은 청주군 청주면 본정 1정목에 위치한다고 나오며, 『동아일보』 1928년 12월 26일자에 신간회 청주지회 임시사무소가 본정1정목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충북역사문화연대 위원장 박만순이 현재 북문로 아카사카 일식집(78-20번지)이 있는 건물이 조선일보 청주지국이라고 증언하여 현장을 확정하였다. |














신간회 청주지회 사무실 터 원경
신간회 청주지회 활동 관련기사(『중외일보』, 1927년 12월 25일)
신간회 청주지회 사무실 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