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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당 결성지-춘천여자관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현재 교회는 이전한 상태이다. 빨간 지붕의 집이 들어서 있고, 나머지 공간은 공터로 남아있다.
정의 1933년 홍천지역 기독교 계열 인사들이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십자가당을 결성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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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유자훈(劉子勳)/남천우(南天祐)/이윤석(李胤錫)/김복동(金福童)/남궁억(南宮檍)/김경환(金慶煥)/남궁식(南宮植)/김재인(金在仁)/송완식(宋完植)/이기섭(李基燮)
관련 내용 1933년 홍천군 서면 모곡리 인근의 기독교 감리교계 목사와 신자들이 ‘공존공향의 지상천국’을 건설하고자 십자가당(十字架黨, 일명 크레스트당)을 조직하였다. 유자훈(劉子勳)과 남천우(南天祐)는 1932년 말 십자가당 결성을 상의하고, 1933년 2월경 이윤석(李胤錫), 김복동(金福童), 이기섭(李基燮) 등을 만나 입당을 설득하였다. 4월 19일부터 사흘 동안 춘천읍내 감리교 단체 집회소인 춘천여자관에서 열린 조선감리교 동부지구 연례회의 기간 중에 십자가당 결당식을 거행하였다.
비밀리에 당의 활동을 추진하였으나 홍천경찰서의 주목을 받아 조사 대상이 되었다. 일제 경찰이 남궁억의 제자로 모곡학교의 교사인 김복동의 일기장을 검토하다 십자가당의 정체가 드러나 유자훈, 남천우, 이윤석, 김복동, 이기섭, 김경환(金慶煥), 남궁식(南宮植), 김재인(金在仁), 송완식(宋完植) 등 당원 전체가 체포되었다. 남궁억(南宮檍)도 함께 구속되어 조사를 받았다. 남궁억, 유자훈, 남천우, 이윤석, 김복동, 이기섭 6인은 예심에 회부되고, 1934년 8월 3일 남궁억, 유자훈, 남천우, 김복동 4인이 최종적으로 공판에 회부되었다. 1935년 1월 31일 유자훈과 남천우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남궁억과 김복동은 각각 10개월과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참고 문헌 『동아일보』, 1933년 12월 27일, 「홍천 ‘십자가당’ 남궁억 등 6명 기소」.
『동아일보』, 1934년 8월 4일, 「洪川 十字架黨事件 南宮檍老人終豫」.
『동아일보』, 1935년 1월 18일, 「十字架黨, 公判今日 南宮檍外五名出廷」.
『동아일보』, 1935년 1월 19일, 「江原道 洪川에서 南宮檍이 監理敎牧師」.
『조선중앙일보』, 1935년 1월 19일, 「십자가당 남궁억 등, 최고 1년반 구형, 판결언도는 31일」.
『조선중앙일보』, 1935년 1월 19일(석간), 「십자가당 피고 등의 입정」.
『동아일보』, 1935년 2월 1일, 「十字架黨判決, 南宮檍老人은 執行猶豫 二名만 體刑言渡」.
『조선중앙일보』, 1936년 2월 4일, 「십자가당 사건, 유복석, 남천우 양인 출옥」.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8, 1976, 608~609쪽.
오영섭, 「1930년대 전반 홍천의 十字架黨사건과 기독교사회주의」, 『한국민족운동사연구』 33, 2002, 168~179쪽.
춘천중앙교회 역사출판위원회, 『 춘천중앙교회사』, 2007, 319·400~408쪽.
춘천중앙교회 역사출판위원회, 『춘천중앙교회사화보』, 2008, 28~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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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강원도 춘천군 춘천읍 허문리
주소 강원 춘천시 서부대성로43번길 7-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동아일보』 1933년 12월 27일자 기사를 통해 춘천중앙교회 내 춘천여자관에서 십자가당이 결당한 것을 확인하였다. 『춘천중앙교회사』 등의 교회 기록을 통해 교회가 현재의 요선동에 위치하였음을 고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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