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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석윤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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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가옥이 있던 곳에는 현재 1층 양옥집 2개가 들어서 있다. 원래 가옥은 ‘4·3’ 당시 소실되었다고 한다.
정의 1909년 의병항쟁을 일으켰던 김석윤이 살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09 제주의병
관련 조직 제주의병 
관련 인물 김석윤(金錫允 : 이명 김석명(金錫命), 김근수(金勤受)), 고사훈(高仕訓 : 이명 고승천(高承天), 고경지(高景志)), 이중심(李中心 : 이명 이석공(李錫公)), 김만석(金萬石), 김재형(金栽瀅), 김재돌(金在乭), 양남석(梁南錫), 양만평(梁萬平), 한영근(韓永根), 조인관(趙仁官 : 이명 조병생(趙丙生))
관련 내용 김석윤(金錫允, 1877-1949)은 1877년 8월 23일 제주 이도리 138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석명(金錫命), 김근수(金勤受)이다. 1894년 7월 15일 전주 위봉사에서 박만하를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근대제주불교를 중흥한 대표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경서에도 능통하여 22세에 광양사숙(光陽私塾)의 훈장, 30세에 연동촌 문귀사숙(文龜私塾)의 훈장을 역임하였다.
1909년 2월 그는 고사훈(高士訓)·이중심(李中心)·노상옥(盧尙王)·조인관(趙仁官)·김재돌(金在乭)·양남석(梁南錫)·양만평(梁萬平)·한영근(韓永根)·김만석(金萬石) 등과 함께 제주군 중면 광양동 조인관의 집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가졌다. 여기에서 고사훈과 이중심을 의병장으로 추대한 후 3월 3일 관덕정에서 일제히 거사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김석윤은 의병항쟁에 따른 자금을 전담하기로 하고 고사훈이 대정에서 기병하여 제주성에 당도하면 제주성내에서 호응하여 이중심과 함께 항쟁하기로 하였다. 또한 격문과 통고사의 초안을 작성하여 제주 전지역에 발통하였다. 모임이 끝난 후 김석윤·이중심 등은 제주군 중면을 중심으로 의병들을 규합하여 거사 당일에 힘을 합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의병장 고사훈과 김만석이 경찰의 급습을 받아 체포된 후 총살되면서 거사는 좌절되었고, 김석윤은 3월 4일 광양에서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김석윤은 내란죄로 기소되어 광주지방재판소 검사국으로 송치된 후 10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참고 문헌 「형사사건부」.
관음사교무소,『교적부』, 1947.
「濟警秘發제36호의 3」,『暴徒에 관한 篇冊』, 경무국, 1909.
김동전,「1909년 제주의병의 실상과 의의」,『성주』5, 고씨종문회총본부, 1995.
제주도지편찬위원회,『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 1996.
광복회 제주지부,『모충사의 항일독립운동 선열록』, 1999.
한금순,「승려 김석윤을 통해 보는 근대 제주인의 사상적 섭렵」, 『대각사상』제19집, 2013.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별책1(의병항쟁재판기록), 고려서림, 1984, 711~712쪽.
제주항일기념관, 『제주항일항쟁사-기유제주의병항쟁편』, 2016, 87~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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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제주군 중면 오라리 644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정실 4길 22-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교적부』(1947)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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