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정선 899고지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철수반격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6·25 전쟁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 정의 | 1951년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시 국군 제9사단이 정선 부근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
|---|---|
| 관련 조직 | 국군 제3군단, 국군 제9사단 제29연대 제3대대, 북한군 제2군단 |
| 관련 인물 | 김종갑, 고백규, 이영호 |
| 관련 내용 |
국군과 유엔군은 1951년 2월 중공군의 제4차 공세를 저지하고 재반격작전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무렵 북한군이 영월-정선 방면으로 침투함으로써 후방교란의 위험에 처하였다. 정선전투는 북한군 제2군단과 제3군단 예하사단이 평창-영월로 계속해서 남하하자 국군 제9사단이 남하하는 북한군의 우측에 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 격멸하기 위해 치룬 전투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의 하나가 나전리의 899고지 전투이다. 1951년 2월 공산군의 대규모 공세가 있자, 국군 제9사단은 창리 - 청옥산 - 가리왕산 - 상원산을 연하는 선에 방어선을 형성해 남하하는 북한군의 측면과 배후에서 공격하고자 계획하였다. 제9사단은 2월 16일 방어배치를 완료한 후 17-18일 북한군 1개 연대를 물리치고 창리를 일시 점령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북한군의 반격으로 정선까지 철수해 이 일대에서 24일까지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이 무렵 정선 북쪽에 배치된 제29연대 방어지역에서는 제3대대가 위치한 하봉과 899고지 일대에서 피아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제29연대 제3대대는 하봉과 899고지 일대를 끝까지 사수함으로써 정선에 대한 북방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후 제9사단은 작전지역내의 북한군 주력을 섬멸하고 제7사단에게 작전지역을 인계한 후 여량리-송계리선으로 이동해 아리조나선을 점령하기 위한 북진작전을 개시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5, 1972, 523-540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중), 1996, 403-406. 군사편찬연구소,『6.25전쟁사』8, 2011, 256-26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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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나전리 |
|---|---|
| 주소 | 강원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 산 193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사』5권 523-540쪽에 의하면, 1951년 2월 16일부터 국군 제9사단이 북한군 제2군단 예하 사단과 정선 일대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였으며, 그 중 제29연대가 2월 20일 나전리의 899고지 및 하봉을 점령했음이 확인된다. |














정선 - 창리 전투(1951. 2. 24)
정선 - 창리 전투(1951. 2. 16~2. 17)
신촌에서 바라본 899고지(북쪽)
정면에서 바라본 899고지
남쪽에서 바라본 899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