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 사건 |
연곡천 전투, 강릉 전투, 대관령 전투 |
| 관련 조직 |
국군 제8사단 제10연대, 제21연대, 제18포병대대, 북한군 제1경비여단, 제5사단 |
| 관련 인물 |
이성가, 장경석, 고근홍, 김용배 |
| 관련 내용 |
사천은 북한군의 남침 시 강릉 방어를 위한 국군 제8사단의 최후 저항선이었다. 국군 제8사단은 1950년 6월 27일 연곡천 방어선이 급속히 돌파되고 사천선 남안으로 병력이 분산 후퇴하는 위기상황에처하였다. 이에 이성가 사단장은 사천선 남안에서 병력을 수습하는 한편 사단예비로 강릉농업학교에 있던 제21연대 제3대대에 사천선 공격명령을 하달하였다. 제21연대 제3대대는 사천선 제방에 산개한 2개 중대의 엄호하에 2개 중대가 사천을 건너 노동하리까지 진출해 북한군과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집중되는 적의 포격과 북한군의 우회 공격으로 인해 제3대대는 유천리로 철수하였으며, 곧이어 사천방어선도 붕괴되었다. 이때 사천초등학교와 그 일대에 포진한 사단포병인 제18포병대대는 사단장의 철수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대포병 사격과 철수 병력 엄호사격을 실시하여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였다. 제18포병대대는 포를 유기하지 않기 위해 포병진지로 몰려든 북한군과 백병전을 벌이기도 하면서 포를 후방으로 안전하게 철수시켰다. 그 결과 국군 제8사단은 차후 작전에서 다른 사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력한 포병의 화력지원이 가능할 수 있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2, 2005, 589-592쪽. 국방군사연구소,『한국전쟁』(상), 1995, 141-14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