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장승천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철수방어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장승천 전투지는 당시의 원형이 완전히 변형되었으나, 주변 고지일대는 대체로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그 일대에 부대가 위치하고 있어 전술적 가치를 짐작케 한다. |
| 정의 | 1951년 4월 22일 중공군 춘계공세시 터키 여단이 장승천 일대 신촌, 옛고개, 305고지 등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1 중공군 춘계공세 |
|---|---|
| 관련 조직 | 터키 여단, 중공군 제60군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1951년 4월 22일 터키 여단은 연천 부근 장승천 일대에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이날 밤 중공군은 여단의 양측방 전투지경선을 따라 각 1개 연대를 투입, 야간을 이용하여 깊숙이 침투하였다. 이에 터키 여단은 여단 왼쪽의 통신시설이 파괴되었으며 오른쪽에서는 예비대대 지역까지 중공군의 습격을 받았다. 터키 여단은 진내로 돌입한 중공군과 뒤엉켜 백병전으로 맞섰으나 포격 지원이 중단되면서 일부가 방어선이 돌파당하는 등 위기를 맞았다. 특히 여단 좌측방으로 침투한 적의 선두가 다라미 고개에 배치된 제1중대 경계소대를 공격하여 소대장이 포로가 되고 일부 부상자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전사 또는 실종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에 미 제25사단장 킨(William B.keam)소장은 터키 여단에게 한탄강 남안으로 설정된 캔사스선에 저지진지를 점령한 미 제35연대의 후방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에 퇴로를 차단당한 우측방 대대가 제일 먼저 적의 포위망 돌파를 강행하였다. 그러나 적의 치열한 사격으로 중대장을 비롯하여 많은 병사가 부상을 입거나 적에게 포로가 되었으며, 중대원들은 각개로 한탄강으로 철수하였다. 터키 여단은 이튿날인 4월 23일이 되어서야 한탄강 남안에 집결할 수 있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10, 1979, 355-357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중, 1996, 519-52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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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
|---|---|
| 주소 | 경기 연천군 중면 마거리 56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사』10권에 의하면, 1951년 4월 22일 터키 여단이 장승천 일대에서 중공군의 침투공격을 받고 많은 희생을 치루면서 방어전투를 수행하였음이 확인된다. |














장승천 후방 교량
장승천 전투지 전경
장승천 감제고지
장승천 주변 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