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괘방산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전쟁 당시의 원형이 거의 대부분 남아있다. |
| 정의 | 1950년 8월 2일 미 제24사단 제19연대가 지수면 청원리 괘방산에서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전투를 수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거창 전투, 권빈리 전투, 안의 전투 |
|---|---|
| 관련 조직 | 미 제24사단, 북한군 제6사단 |
| 관련 인물 | 처치 소장, 방호산 소장 |
| 관련 내용 |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8월 1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을 방어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미 제 24사단은 8월 3일까지 낙동강방어선상의 돌출부지역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단예하 제19연대는 8월 2일 아침 무촌리 일대에 대한 정찰을 실시하였는데, 봉암리 전방의 발산고개를 통과하던 중 북한군의 기관총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전차부대 역시 북한군으로부터 육탄공격을 받았다. 또한 정면으로부터 공격하는 북한군은 도랑 속에서 포로로 잡은 미군 병사들을 방패로 삼고 전진해 왔다. 또 밤 사이에 괘방산 정상을 점령한 북한군은 전방의 은폐지에 있던 B중대를 기습하여 중대장을 사살하고 도로까지 진출하여 아군 진지에 사격하였다. 미 제19연대 제1대대와 미 제29연대 제1대대는 고개 위에서 적의 사격을 받았고, 은밀하게 침투한 북한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더구나 이날 정오경 유엔공군기의 오폭으로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적의 공격을 받고 백병전을 치렀다. 마침내 미 제29 연대 제1대대의 C중대가 괘방산 정상을 탈환하고 우측의 위협을 제거하였다. 또한 미 제19연대 제1대대와 민기식부대 사이로 침투한 북한군은 연대 예비인 제2대대가 역습을 감행하여 격퇴시켰다. 8월 2일 오후가 되면서 북한군은 공격을 중단하였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미군은 약 90여 명의 피해를 입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280-283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225-32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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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 청원리 |
|---|---|
| 주소 | 경남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미 제24사단 19연대는 1950년 8월 2일 괘방산지역에서 북한군과의 전투를 치루었음이 확인된다. |














괘방(대방)마을 전경
괘방(대방)산 입구 주변
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괘방(대방)마을
괘방(대방)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