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구역 병력 집결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후방지원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현재 새로 대구역이 중축되어 전쟁 당시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
| 정의 | 붃한군의 남침 직후 낙동강방어선이 편성될 무렵 국군의 전방 지역 전투부대에 대한 병력과 물자 수송을 위해 사용되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병력동원, 물자동원 |
|---|---|
| 관련 조직 | 학도의용군, 노무단, 훈련소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대구에 철도가 처음 개설된 시기는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의 개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이래 1913년 2월 1일에는 청사를 신축·준공하였으며, 1934년에 이르러 1일 평균 수송인원이 2,868명으로 대구역은 경성 다음가는 큰 역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대구역은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그 중요성이 배가되었다. 북한군의 남침속도는 신속하여 7월 중순 경에 이미 충청도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기 까지 대구는 전방 지휘 본부였고 이에 따라 대구역은 전방으로 가는 신병들의 집결지로서 뿐만 아니라 보급 물자지원의 최전선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낙동강방어작전 시기 대구역 광장에는 많은 학도병들이 전선에 출정하기 위해 자원하여 몰려들었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피난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으며, 대구역에 모여 구국의 결의를 다졌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4, 2008, 649-650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49-35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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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대구시 칠성동2가 |
|---|---|
| 주소 | 대구 북구 칠성동 2가 30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4권에 의하면, 대구역은 공군의 헌병대가 본대를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 당시 국민방위군의 집결지 였으며 현재도 역으로 남아 있다. |














대구역 우측면
대구역 전경
대구역 좌측면
대구역 정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