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사강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현재 사강시장은 여전히 2일, 7일에 서는 5일장의 형태를 갖춘 재래시장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당시 건물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상설상점들의 상가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28일 사강장날을 이용하여 주민들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28 수원군 사강시장 독립만세시위, 1919.3.28 수원군 송산면사무소 뒷산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홍면옥(洪冕玉), 홍효선(洪孝善), 김창준(金昌俊), 왕광연(王光演), 홍태준(洪泰俊), 홍문선(洪文善) |
| 관련 내용 |
1919년 3월 28일은 사강장날로서 주변 마을 사람들이 장터로 모이는 날이었다. 이에 주재소에서는 26일에 있었던 만세시위가 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침부터 상인들에게 점포를 닫도록 지시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전 10시경부터 사강장터에 모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같은날 오전 11시경에는 홍면옥이 자신의 집 앞뜰에서 홍효선·김창준·왕광연·홍태준·홍문선 등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홍면옥은 이규선과 홍효선 등과 함께 "오늘이 사강리의 장날이므로 오후2-3시에 동네 주민들과 사강장에 오는 인근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만세를 부르자"고 하며 면사무소 뒷 언덕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때 송산면사무소 앞과 뒤 언덕 및 그 부근 그리고 사강주재소에서 홍문선·홍성한·홍관후·문상익·이경집·박춘흥·민용운·전도선 및 다른 1천여 명의 군중이 국권회복을 위하여 태극기를 치켜들고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사건은 3월 27일부터 이틀간 전개된 대대적인 송산면 만세시위 연장선에 있는 운동이었다. |
| 참고 문헌 |
「홍면 등 22인 판결문」, 1920년 5월 3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성지방법원)예심종결결정」·「(경성지방법원)공판시말서」 ;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22, 1995, 254~259·261~271쪽. 京城商工會議所, 「朝鮮に於ける市場取引の現況」,『 朝鮮經濟雜誌』 165, 1929년 9월. 화성시사편찬위원회, 『화성시사』 1, 화성시, 2005, 558~561쪽. 金成勳 外, 『韓國農村市場의 制度와 機能硏究』, 國立農業經濟硏究所, 1977. 박환, 『경기지역 3·1 독립운동사』, 선인, 2007, 17·217~220쪽. 화성시·수원대학교박물관,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 보고서』, 2003, 122쪽.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002(임야원도_034)」, 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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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
|---|---|
| 주소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시장길 43번길 15-1(사강리 660-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홍면 등 22인 판결문」 및 「(경성지방법원)예심종결결정」·「(경성지방법원)공판시말서」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경성상공회의소에서 쓴 「조선에서의 시장치인의 현황」, 김성훈 등이 쓴 『한국농촌시장의 제도와 기능연구』 등에서 현재 사강장터의 위치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보고사』122쪽에 기재된 사강리 660~680번지가 사강시장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