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문상익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최근에 집을 허물어 집 터는 비어있으며, 주변에는 빌라가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28일 송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한 문상익이 거주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홍면옥(洪冕玉)/홍명선(洪明善)/홍준옥(洪㻐玉)/홍효선(洪孝善)/왕광연(王光演) |
| 관련 내용 |
문상익(文相翊, 1893~1960)은 1917년 7월 송산면 서기로 임명되었다. 그는 면서기의 신분으로서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6일 사강리 홍면옥을 포함한 120명의 계원들이 구장 홍명선 집에 모여 홍면옥·홍효선의 주도하에 송산면사무소로 가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문상익은 200명까지 늘어난 시위대가 송산면장 이하 면서기들에게 만세를 부르게 하자 이에 동참하여 밤 11시까지 시위를 벌였다. 다음날 27일과 28일 장날에 시위가 있었고, 사강 시장 시위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사강장날이었던 28일 홍면옥과 홍효선 등은 면사무소 뒷산에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출동한 수원경찰서 순사부장 노구치[野口]를 비롯한 일제 경찰이 발포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자, 홍면옥은 거세게 항의하였고, 노구치의 총격으로 어깨에 부상을 입게 되었다. 이를 본 시위대는 흥분하여 노구치에게 달려들었고, 부상을 입은 홍면옥은 면사무소에서 동생 홍준옥에게 치료를 받으며 노구치를 처단할 것을 강조하였다. 노구치는 주재소 쪽으로 도주하다가 이를 뒤쫓은 홍준옥·왕광연·문상익 등에 의해 돌과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문상익은 사강장터 시위에도 적극 참여하다 체포되었다. 문상익은 1920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살인 및 보안법위반 혐의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문상익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1971, 166쪽. 화성시·수원대학교 박물관,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 화성시, 2003, 104~107쪽. 경기도 문화재단·경기도 문화유산과,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문화유산 실태 조사 보고서』1, 2017.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002(임야원도_0034)」, 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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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526 |
|---|---|
| 주소 | 경기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2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문상익 공적조서」에는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510번지로 되어 있고, 체포당시 작성된 「문상익 신문조서」와 『화성지역 3·1운동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에는 사강리 526번지로 기재되어 있다. 조카 문광환도 510번지로 증언하고 있으나 신문조서에 기재된 번지를 따르기로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