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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태인의병 유숙지 - 구암사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건물
상태 변형 / 19세기 초엽 중창된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모두 불타고 현재의 가람은 이후 새로 지은 것이다.
정의 최익현과 임병찬이 이끄는 태인의병이 정읍에서 순창으로 진군하던 도중 유숙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06 태인의병의 의병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최익현(崔益鉉)/임병찬(林炳瓚)/고석진(高石鎭)
관련 내용 1906년 6월 4일 무성서원에서 창의한 최익현 등은 곧장 태인으로 이동하여 태인향교에 임시 지휘부를 설치하고 장정을 모아 군비를 확충하였다. 이튿날 태인향교를 출발 정읍관아에 도착하여 군비를 확충한 뒤 내장사로 가 유숙하였다. 이날 고창 출신의 고석진(高石鎭)이 포군 30여 명을 거느리고 와서 태인의병에 합류하였다. 당시 군사의 수는 300여 명에 달하였으나 제대로 무장한 이는 많지 않았다.

내장사에서 하루를 머문 의병은 다음날 아침 좌·우익을 나누어 군사연습을 전개하여 군의 모습을 정돈하기 시작하였다. 이른 아침에 내장사를 출발한 일행은 험한 산길을 타고 노령산맥을 넘어 30리를 행군한 끝에 구암사(龜巖寺)로 들어갔다. 태인의병이 이곳에 진을 친 것은 지세가 험하고 튼튼하여 군사를 주둔할 만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며 향후 진로를 모색한 최익현과 임병찬 등은 장차 남원으로의 진격을 염두에 두고 일단 순창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하였다.

구암사는 623년 숭제(崇濟)가 창건하였다. 1392년 중창하였고, 태종 때에도 중창한 뒤 구암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절터는 현재 구암폭포가 있는 부근이었으나 1592년 불에 탔다. 영조 때 다시 사세가 커지기 시작하여 1800년대 초 현재의 절터에 건물을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불에 탔으며, 1957년 복원했으나 1959년 다시 불에 탔고 이것을 1973년 5월에 중창하였다.
참고 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1-의병항쟁사, 1970, 368-386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2-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52-84·110-112쪽.
민족문화추진회,『 면암집』부록 권 4,「연보」.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전북의병사』하, 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92, 696쪽.
박민영, 『한국독립운동의 역사』10,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15-118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주소 전북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374
도로명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
위치 고증 『면암선생창의전말』과 『돈헌문답기』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구암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8세기 중엽 현재의 터에 중건되었다. 1950년 다시 불에 탔으나 그 자리에 복원되어 위치를 비정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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