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가평공립보통학교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가평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15일 가평군 북면과 군내면 주민 수백 명이 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15 가평군 북면사무소 앞 독립만세시위/1919.3.15 가평군 가평공립보통학교 앞 독립만세시위/ 1919.3.16 가평군 북면 목동리 성황당고개 독립만세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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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이윤석(李胤錫)/정흥교(鄭興敎)/장기영(張基榮)/정성교(鄭聖敎) |
| 관련 내용 |
가평군의 3·1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5일과 16일 양일 간에 걸쳐 북면 목동리에서 시작하여 가평군청이 있던 군내면 읍내리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3월 15일 북면 목동리에 있는 북면사무소 앞에 집결한 시위군중들은 이규봉(李圭鳳) 등의 주도 하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오를 편성하여 군내면으로 이동하였다. 이들은 가평군청·가평공립보통학교·군내면사무소 등지를 돌며 시위행진을 벌였는데, 참여 숫자나 분위기에서 가평 만세운동의 정점을 이루었다. 다음날인 3월 16일에도 시위는 계속되었다. 전날 시위로 인해 이윤석·정흥교 등이 가평헌병분견소에 체포·구금되자, 장기영·정성교 등 200여 명은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다시 북면 목동리로 나아갔다. 그러나 목동리의 성황당고개에서 헌병대와 마주치자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으나 결국 해산당하고 말았다. 가평군 북면과 군내면에서의 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70여 명이나 되었다. 이 중 28명은 징역 6개월에서 3년까지의 실형이 선고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태형 30대를 맞고 석방되었다.` |
| 참고 문헌 |
「이윤석 등 28인 판결문」, 1919년 4월 26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윤석 등 26인 판결문」, 1919년 7월 14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5, 1971, 501~511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2-삼일운동사(상), 1971, 187쪽. 경기도사편찬위원회,『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 경기도, 1995, 375~378쪽. 가평군사편찬위원회,『가평군지』2, 가평군, 2006, 211~215쪽. 가평초등학교 홈페이지(http://www.zat.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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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가평군 군내면 읍내리 |
|---|---|
| 주소 | 경기 가평군 군내면 읍내리 55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이윤석 등 28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가평초등학교 홈페이지의 학교 연혁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














정성교
장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