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노림리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만세시위를 전개했던 옛 길은 현재 새롭게 도로가 확장·정비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
| 정의 | 1919년 3월 27일 노림의숙 졸업생 7명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27 노림의숙 졸업생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노림의숙 |
| 관련 인물 | 홍남표(洪南杓)/어수갑(魚秀甲)/한범우(韓範遇) |
| 관련 내용 |
1915년에 설립된 노림의숙(魯林義塾)은 1919년 3월 22일에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이들 노림의숙의 제1회 졸업생들이 주도하여 노림리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노림의숙 교사 홍남표(洪南杓)·어수갑(魚秀甲)은 고종 인사에 참례하러 상경했다가 돌아 올 때 독립선언서를 가져와 노림의숙 졸업생 40여 명에게 분배하여 독립운동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런데 1919년 3월 27일 원주군수 오유영(吳唯泳)이 민심 수습 차 부론면사무소가 있는 흥호리에 출장하여 시국강연을 하였는데, 이 때 노림의숙 졸업생 수명이 군수에게 항거하려다 제지당하였다. 노림리로 돌아와 졸업생들은 한범우(韓範遇)의 주도로 한돈우(韓敦愚), 김성수(金性秀) 등 서당 학생 6명이 농민 2명과 함께 대한독립만세 깃발을 들고 군수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기다렸다. 오후 4시 30분경 원주군수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깃발을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그를 뒤따라가서 ‘철원군수는 민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너는 왜 만세를 부르지 않느냐!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자’고 요구하며 계속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군수가 돌아 간 얼마 뒤 문막헌병주재소에서 헌병과 보조원이 출동하여 주도자 한범우를 체포하였다. |
| 참고 문헌 |
「한범우 판결문」, 1919년 4월 24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1971, 582~584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961쪽. 광복회 강원도지부, 『강원도항일독립운동사』 Ⅲ, 1992, 358~35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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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원주군 부론면 노림리 |
|---|---|
| 주소 | 강원도 원주시 장남밤개길 81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범우 판결문」에서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노림리 주민 한민국씨의 증언에 의하면 49번 지방국도 상의 느티나무(고유번호 : 강원 원주 64) 주변에서 만세를 외친 것으로 추정된다. |














노림의숙 터(2021년 촬영)
노림리 만세시위지(2021년 촬영)
「한범우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19년 4월 24일)
노림초등학교 앞 도로(2021년 촬영)
노림리 만세시위지(2021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