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춘천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
| 상태 | 변형 / 옛 춘천시장은 6·25전쟁으로 대부분 파괴되었고, 이후 이 자리에 다시 시장이 개설되었으나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
| 정의 | 1919년 3월 28일 춘천장날에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7 춘천공립농업학교 학생 독립만세시위/1919.3.28 춘천장터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임종한(林宗漢)/신윤철(申允喆)/윤도순(尹道淳)/이준용(李俊容)/박순교(朴順交)/허기준(許基俊)/허현(許鉉) |
| 관련 내용 |
춘천은 도청을 비롯한 관공서가 밀집되어 있고, 강원도 경무부, 춘천경찰서, 춘천헌병대, 춘천헌병분대가 위치해 삼엄한 감시를 펼치던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독립만세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지는 못하였다. 2월 28일 안상덕(安相德)이 평강천도교구실에 독립선언서 600매를 가져 와서 3월 1일 교구장 이태윤(李泰潤)이 임종한(林宗漢)과 신윤철(申允喆)에게 150매를 교부하며 춘천에 배포하도록 했다.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기 위해 여관에서 머물면서 독립선언서를 땅 속에 묻어 숨겨 두었다가 1919년 3월 4일 체포되고 독립선언서가 압수당하였다. 그러나 3월 10일경 전후에 춘천천도교구장 이준용(李俊容)과 봉훈 윤도순(尹道淳) 등이 독립만세를 추진하였다. 특히 윤도순은 3월 10일부터 14일까지 군내 여러 인사들에게 춘천 읍내에서 독립만세를 외치자고 권유하였다. 하지만 윤도순이 체포를 당해 독립만세는 실행되지 않았다. 이후 3월말 경에 이르러 이준용·박순교(朴順交)·허기준(許基俊) 등이 3월 28일 춘천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28일 일제 헌병과 수비대가 춘천 시내를 삼엄하게 경계하였지만, 이들은 태극기를 숨겨가지고 춘천 장터로 들어가 수십 명의 시장 군중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장터를 경계하던 헌병보조원 허현(許鉉)은 총을 버리고 만세시위에 가담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일제가 이준용·박순교·허기준·허현 등 주도인물들을 체포하자, 만세시위는 끝나고 말았다. 춘천면의 요선당(要仙堂)이 이곳에 있었으므로 요선당리라 불리었다. 6·25전쟁 때 폐허가 되었던 요선동이 재건되면서 요선동시장이 크게 번창하였다. |
| 참고 문헌 |
朝鮮總督府, 『近世韓國五萬分之一地形圖』, 1918. 「윤도순 판결문」, 1919년 4월 25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박순교 등 4인 판결문」, 1919년 4월 25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1971, 560~562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949~950쪽. 광복회 강원도지부, 『강원도항일독립운동사』 Ⅲ, 1992, 344~345쪽. 최창희, 「강원도의 3.1운동」, 『강원도 항일독립운동사』 3, 광복회강원도지부, 1992, 344~345쪽. 엄찬호, 「강원지역 3.1운동의 특성에 대한 재조명」, 『강원사학』 33,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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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춘천군 춘천면 요선당리 |
|---|---|
| 주소 | 강원 춘천시 서부대성로 48번길 9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윤도순 판결문」·「박순교 등 4인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춘천장터는 요선당리에 있었으며, 현재의 요선동시장이다. |














요선시장 전경(2021년 촬영)
요선시장 거리(2021년 촬영)
춘천시가
1920년대 요선동거리
요선시장 전경(2021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