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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흥업리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산야
상태 변형 / 도로가 정비되고 새롭게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한라대학교 정문 뒷편에 흥업리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정의 1919년 4월 9일 원주군 흥업면 흥업리 주민들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4.9 원주군 흥업리 뒷산 독립만세시위/1919.4.9 원주군 흥업면사무소 앞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현순(李賢淳)/홍대성(洪大成)/홍학성(洪學成)/함원동(咸元東)
관련 내용 원주시에서 가장 가까운 흥업면에서는 고종 인산 때 상경하였던 사람들이 서울의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가져와 전파시키면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1919년 4월 9일 낮과 밤 2차례에 걸쳐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낮에는 사제리에서 주민들 100여명이 집합해 독립만세를 외쳤고, 밤에는 흥업리 주민들이 마을 뒷산과 면사무소에서 만세를 외쳤다.
흥업리에서는 이현순(李賢淳)과 홍대성(洪大成)이 주도하여 태극기를 만들고, 홍학성(洪學成)과 함원동(咸元東)을 시켜 주민들을 모았다. 이현순은 주민 40여 명을 이끌고 고종 서거 때 망곡례(望哭禮)를 올렸던 면사무소 뒷산 언덕으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어 주민들의 참가가 늘어나 200여명의 군중들은 면사무소로 이동해 독립만세를 외쳤다. 면사무소를 둘러싸고 면장 서정우(徐廷禹)에게 독립만세를 외치라고 요구하였다.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고 군중들에게 해산을 회유하던 면장도 사태가 위급함을 느껴 끝내 만세를 외쳤다. 이에 군중들은 자진 해산을 하였다.
다음날부터 일제 관헌이 검거에 나서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주민들이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이현순은 징역 10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참고 문헌 「이현순 판결문」, 1919년 5월 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1971, 586~58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956~958쪽.
광복회 강원도지부, 『강원도항일독립운동사』 Ⅲ, 1992, 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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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강원도 원주군 흥업면 흥업리
주소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한라대길 1 일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이현순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만세시위가 전개된 잘개미[自甘村](혹은 자감촌)와 면사무소 뒷산인 문필봉은 예전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마을 주민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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