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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금마리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금마리 마을은 농지와 비닐하우스 등으로 바뀌어 있다. 금마리 마을 입구에는 표지석이 있으며, 주천으로 넘어가는 82번 지방국도 고개 마루 주유소 앞에는 금마리 독립만세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정의 1919년 4월 21일 금마리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4.21 영월군 금마리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박수창(朴受昌)/박광훈(朴光勳)/이용헌(李容獻)/이병익(李炳翼)/박수영(朴受永)/박재호(朴在鎬)/박춘희(朴春喜)/김창진(金昌鎭)/박수찬(朴受燦)
관련 내용 1919년 4월 20일 오전 9시경 금마리 박수창의 집에 모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박수창은 양변면장을 역임한 금마리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그는 아들 박광훈, 박광훈의 처남인 이용헌 그리고 이병익·박수영·박재호 등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을 세웠다. 박수창의 손자인 박춘희·김창진·박수찬 등은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원래는 주천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려고 계획하였지만, 영월군수 석명선(石明瑄)이 4월 20일에 농사 강화 때문에 수행원과 함께 마을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계획을 바꾸어 강연장에서 군수와 같이 시위하기로 결정하였다. 주도자들은 인근 마을을 다니면서 사람들은 만나 만세연명부를 작성하는 등 철저히 준비하였다. 그런데 군수가 주천장날인 21일에 마을에 왔으므로 21일에 시위가 전개되었다. 주도인물들은 장터로 가는 사람들을 모았다. 오전 11시경 군수가 말을 타고 군주사와 면서기를 대동하고 금마리에 도착하였다. 군수는 마을 원로인 박수창에게 만세반대자명부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박수창은 끝까지 거절하였다. 박광훈·이병익·이용헌·박수영 등은 30~40명의 군중을 이끌고 군수 일행의 길을 막고 군수에게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지 않으면 해치워버리겠다고 위협하였다. 강요로 군수가 태극기를 높이 휘두르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200여 명의 군중들이 연달아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병익은 군수에게 강요하여 만세연명부에 서명하게 하였다. 군수가 돌아간 뒤 주천헌병주재소에서 헌병이 출동하였고, 박광훈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체포되어 심한 구타를 당하였다.
참고 문헌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56보)」, 1919년 4월 23일; 국회도서관,『한국민족운동사료』3·1운동편 3, 1979, 318쪽.
「박광훈 등 17인 판결문」, 1919년 5월 1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2, 1971, 595~596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5, 1971, 964~967쪽.
광복회 강원도지부, 『강원도항일독립운동사』Ⅲ, 1992, 365~366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강원도 영월군 양변면 금마리
주소 강원 영월군 주천면 금마1리 848, 849-1 일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박광훈 등 17인 판결문」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박무훈(박재호의 손자)씨의 증언에 의하면, 금마리 만세운동은 848번지 일대에서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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