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순천읍성 연자루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순천읍성의 남문과 남문루인 연자루는 모두 없어지고 그 터에는 현재 도로와 남문교가 놓여져 있다. 남문교 옆에는 2020년 순천부 읍성 남문터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박항래 흉상이 세워져 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7일 순천군 순천면 주민들이 순천읍내 장날에 박항래의 주도로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박항래 |
| 관련 내용 | 전라남도 순천군 상사면 용암리에 살고 있던 박항래(朴恒來, 1861∼1919)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소식을 전해 듣고, 순천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4월 7일 오후 1시 경 순천읍내 장터에서 백지를 구입하고, 순천읍성 남문의 문루인 연자루(燕子樓)에 올라가 백지를 흔들며 수많은 군중을 향해 조선독립을 위해 독립만세를 외치자고 연설하며 군중들에 앞장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수백명의 군중이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항일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그는 붙잡혀 가면서도 계속 독립만세를 부르며 항일의식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일제의 무력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되고 말았다. 박항래는 그해 4월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던 중 일제의 잔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1919년 12월 24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박항래 판결문」, 1919년 4월 26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승학,『한국독립사』하, 독립문화사, 1971, 152쪽. 이균영,「순천의 3·1만세운동」,『동대사학』1, 동덕여자대학교, 1995. 순천시사편찬위원회, 『순천시사』, 1997, 588쪽. 김진호·박이준·박철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20(국내 3·1운동Ⅱ),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99-20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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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순천군 순천면 저전리 |
|---|---|
| 주소 | 전남 순천시 저전동 남문교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박항래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순천시사』를 통해서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순천읍성 연자루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전경(2022년 촬영)
순천읍성 연자루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전경(2022년 촬영)
순천읍성 연자루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전경(2022년 촬영)
순천읍성 연자루 터 3·1운동 만세시위지에 세워진 박항래 흉상(2022년 촬영)
순천읍성 연자루(남문, 1920년대)
순천읍성 연자루(남문, 191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