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덕산정 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현재 시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나 옛 모습을 볼 수 없고, 시장구조는 일부 남아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10일 대구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계성학교 학생들과 군중 약 200명이 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박남준(朴南俊)/김재소(金在炤)/이영호(李齡鎬)/김삼도(金三道)/박태현(朴泰鉉)/박재헌(朴在憲) |
| 관련 내용 |
대구지역 3·1운동은 크게 3차례 일어났다. 제1차는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제2차는 3월 10일 덕산정 시장에서 일어났다. 제3차는 3월 30일 동화사 지방학림(地方學林) 학승(學僧)들이 덕산정 시장에서 일으켰다. 제1차 만세운동에서 붙잡히지 않은 학생 중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 박남준·김재소와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김삼도·박태현·박재헌 등이 지방 인사들과 논의하여 3월 10일 현재의 염매시장인 덕산정 시장(남문외 시장)에서 거사하기로 뜻을 모았다. 3월 10일 오후 4시 장꾼으로 꾸민 학생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수백 명의 장꾼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경계를 펴고 있던 일본 군경의 급격한 제지로 시위 군중은 해산되었다. 이 때 65명이 구속되고 그중 박남준·김재소·김삼도·박태현·박재헌 등 10명이 실형을 선고 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
| 참고 문헌 |
「이영호 판결문」, 1919년 5월 3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만집 등 판결문」, 1919년 5월 3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대구지적도」, 1927(대구향토역사관 소장). 경상북도경찰부,『고등경찰요사』, 1934, 24쪽. 김의환,「大邱 三一獨立運動의 考察」,『大丘史學』7·8, 大丘史學會, 1973, 13∼14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354∼356쪽. 권영배, 「대구지역 3·1운동의 전개와 주도층」, 『조선사연구』6, 조선사연구회, 1997, 129∼13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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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대구 덕산정 |
|---|---|
| 주소 | 대구 중구 계산동2가 250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이만집 등 판결문」·「이영호 판결문」과『고등경찰요사』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향토역사관 이호 학예사의 증언과 1927년「대구지적도」를 통해 남문외 시장(현 염매시장)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














덕산정(「1:10,000(昭和12年修正測圖)」, 1937,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덕산정 - 염매시장 입구
위에서 본 덕산정 장터
덕산정 장터(현 염매시장)
덕산정 장터 염매시장 도로
덕산정 장터 시장내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