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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안동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멸실 /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 서 있고, 문화의 거리로 활용되고 있다.
정의 1919년 3월 18일 안동교회와 유림들의 주도로 2,5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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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익현(金翊顯)/김계한(金啓漢)/유동붕(柳東鵬)/송기식(宋基植)/송장식(宋章植)/황인규(黃仁圭)/김병우(金炳宇)/권점필(權點必)/이인홍(李仁洪)/송홍식(宋弘植)/권중호(權中鎬)
관련 내용 안동면의 3·1만세운동은 동경 유학생인 강대극(姜大極)과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재명(金在明)의 귀향으로 시작되었다. 강대극은 안동군청 서기 김원진(金元鎭)을 만나 일본과 서울에서 있었던 독립만세소식을 알리고 거사를 권유하였다. 이에 김원진은 김영옥(金泳玉)·이중희(李重熙) 등을 만나 만세날을 정했다. 그러나 그 계획이 사전에 드러나 붙잡히면서 13일의 거사는 무산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 이상동(李相東)은 현재 신한은행 앞에서 단독시위를 펼쳤다. 이것이 안동면 1차 시위였다.

안동면의 본격적인 2차 시위는 3월 18일에 일어났다. 2차 시위는 검속을 면했던 안동교회 사람들과 송천동의 송기식을 비롯한 유림들이 준비하였다. 3월 18일 낮 12시 경, 삼산동 곡물전 앞에서 김병우·김익현·김계한·황인규·권점필·이인홍 등 기독교인 30여 명이 부르는 만세의 함성이 먼저 울렸다. 이어 송기식·송장식·송홍식·유동붕·권중호 등의 유림들이 이끄는 시위대가 합세하였다. 주도자 14명이 붙들리자 시위대는 일단 흩어졌다.

오후 6시경 무렵 다시 기독교인 60여 명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를 불렀다. 밤이 되자 2,5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는 군청·경찰서·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으로 몰려가 애국지사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투석전을 벌였다. 이 날의 만세는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참고 문헌 「유동붕 등 판결문」, 1919년 5월 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북도경찰부,『고등경찰요사』, 1934, 27~2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398~988쪽.
김희곤,『안동 사람들의 항일투쟁』, 지식산업자, 2007, 290~292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안동군 안동면 삼산동
주소 경북 안동시 삼산동 139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고등경찰요사』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와『안동사람들의 항일투쟁』을 종합하여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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