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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애국단 결성지-도피안사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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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국내독립운동
종류 건물
상태 변형 / 도피안사는 6·25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59년 육군 제15보병사단에 의해 재건되었다.
정의 1919년 8월 철원의 애국지사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던 대한독립애국단의 철원군단을 결성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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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대한독립애국단/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인물 김상덕(金相德)/이봉하(李鳳夏)/박윤서(朴潤瑞)/강대려(姜大呂)/김철회(金喆會)/박건채(朴健采)/김완호(金完鎬)/이용우(李用雨)/박건병(朴健秉)/오세응(吳世應)
관련 내용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연락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고 지원하기 위해 대한독립애국단(애국단)이 조직되었다. 애국단은 임시정부의 지원과 재정자금 모집과 송금, 독립운동의 선전, 일제 통치기관에 종사하는 한인에 대한 퇴직 권유 등의 활동을 하였다. 애국단은 서울에 본부를 두었는데 강원도 도단은 철원에 설치되어 철원애국단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19년 철원 출신 김상덕은 애국단에 가입하고 강원도 조직을 결성하기로 하였다. 김상덕은 유지 이봉하·박윤서와 협의하고, 그날 밤 자기 집으로 박윤서·강대려·김철회·박건채 등을 은밀하게 초청, 애국단 군단 설립을 의논하였다. 그리고 8월 11일 저녁 김상덕·박연서·강대려·김완호·이용우·이봉하·박건병·오세응 등은 도피안사에 모여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철원애국단)을 결성하였다.

애국단의 활동이 도내 각지로 확대되어 나갔으나,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철원의 부호가 이를 경찰에 밀고하여 1920년 초 관계자 전원이 체포되었다. 이로써 애국단의 활동도 끝나고 말았다.
참고 문헌 『동아일보』, 1921년 2월 26일, 「철원애국단 공판기일 확정, 래이십팔일로」.
『동아일보』, 1921년 3월 1일, 「철원애국단 공판, 작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사실심문만하고 폐정해」.
「김상덕 등 35인 판결문」, 1920년 12월 23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9, 1975, 1001∼1030쪽.
장석흥,「대한독립애국단 연구」,『한국독립운동사연구』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7, 184∼186쪽.
광복회 강원도지부,『강원도 항일독립운동사』Ⅲ, 1992, 409∼412쪽.
춘천중앙교회 역사출판위원회,『춘천중앙교회사』, 2007, 254∼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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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강원도 철원군 동송면 관우리
주소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도피동길 23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독립운동사자료집』9권과『동아일보』1922년 2월 22일자 기사에 근거하여 도피안사가 철원애국단 결성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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