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월헌병주재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이월터미널에서 직선거리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이월헌병주재소 터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대신 일대는 식당, 당구장, 다방 등 상업시설과 일반 주거시설이 혼재된 곳으로 변모하였다. 골목길 건너편에는 복지문화관, 이월중앙장로교회 등도 위치하고 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2일 진천군 이월면민들이 만세시위 과정에서 습격한 일제 헌병주재소가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1919년 4월 2일 진천 지역의 두 번째 시위가 이월면에서 일어났다. 이날 밤 이월면 소재지인 장양리에서는 약 200명의 군중이 횃불을 들고 봉기하였다. 군중들은 만세 분위기가 고조되자 이월 헌병주재소 이동, 건물을 공격하였다. 일본 헌병들은 공포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9명이 체포되었다. 시위대는 자정을 넘긴 다음날 1시에 해산하였다. |
| 참고 문헌 |
「朝鮮總督府 內秘補 433; 忠北機第269號: 地方狀況報告」, 1919년 4월 5일,『大正八年 騷擾事件ニ關スル道長官報告綴』4. 「高 第9833號: 獨立運動에 관한 건(제37보)」, 1919년 4월 4일,『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 「密 第102號 其154; 第101號; [電報 : 전국 각지의 시위 상황]」, 1919년 4월 5일,『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1. 「朝特報 第9號: 騷擾事件에 관한 狀況(1919.3.26-1919.4.5)」, 1919년 4월 7일,『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3보)」, 1919년 4월 4일,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7)』,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정명, 『조선독립운동』 Ⅰ, 原書房, 1967, 505·53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6, 1973, 931쪽.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 경인문화사, 1998, 240쪽. 정제우, 「진천 3·1운동」, 『상산문화』 제7호, 상산고적회, 2001, 115쪽. 박걸순, 충북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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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장양리 |
|---|---|
|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이월면 송림리 503-10(송림4길 11-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7)』과 『조선독립운동』 Ⅰ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 헌병주재소가 표시되어 있다. 2008년 조사 당시 지금의 이월파출소 자리인 ‘이월면 진광로 803(송림리 425-1)’을 이월헌병주재소터 3·1운동 만세시위지로 비정하였다. 2021년 조사에서 송림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금수(이월향토사연구회 이사, 전 이월부면장)는 자신의 집 바로 앞인 송림4길 11-6(이월면 송림리 503-10)에 이월면사무소가 위치했다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헌병주재소 터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진천군 홈페이지가 ‘1913년 이월면사무소가 옮겨왔다’고 밝히고 있어, 이금수의 증언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는 이월헌병주재소가 이전해온 면사무소 부근에 위치했던 것으로 표시돼 있다. 따라서 당시 이월헌병주재소 터를 당시 이월면사무소가 있던 송림4길 11-6(이월면 송림리 503-10) 일대로 비정하였으나,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기는 곤란하다. |














이월헌병주재소 터 원경
이월헌병주재소 터 주변
이월헌병주재소 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