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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범바위 학생만세시위 계획지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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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산야
상태 변형 / 현재는 전혀 당시의 모습을 찾을 수 없으나, 범바위의 형태는 그대로 남아있다.
정의 1919년 3월 10일 충주 간이농업학교 유자명을 비롯한 교사와 학생들이 만세시위 계획을 상의하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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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유자명(柳子明)/오언영(吳彦泳)/장양헌(張良憲)/유석보(劉錫寶)/김연순(金連順)
관련 내용 1919년 3월 10일경 충주간이농업학교의 졸업기념 야유회가 범바위에서 열렸다. 이날 참석했던 교사 유자명(柳子明)과 학생 오언영(吳彦泳) 등은 충주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상의하였으며, 이때 농업학교 학생과 보통학교 학생들이 의논하여 교회 측과 제휴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서울의 신학교에 재학하는 장양헌(張良憲)이 서울서 일제에 대한 경고문을 가지고 와 비밀리에 교회 안에서 수백 매를 인쇄하자, 교인 유석보(劉錫寶)가 이를 보고 협조하는 한편, 범바위 야유회에서도 교회 측의 연락을 맡았다. 이 경고문은 각처에 배포되었으며 교인들의 독립만세시위 준비장소는 탄금대로 변경되어 비밀리에 태극기와 경고문 등을 준비하였다. 뿐만 아니라, 충주 공립보통학교(현 교현초등학교) 여교사 김연순(金連順)에게 독립운동계획의 권유문을 보내어 보통학교 여학생들에게 참가를 권유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거사는 실패로 끝났다. 이로 인하여 유자명은 일제의 체포를 피하여 중국으로 망명하였고, 김부원·장양헌·최봉기·오언영·유석보 등은 체포되어 청주로 압송되었다. 최봉기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 장양헌·오언영은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다.
참고 문헌 「최봉기 등 3인 판결문」, 1920년 1월 3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109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75~76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면 호암리
주소 충북 충주시 직동 108-1 일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최봉기 등 3인 판결문」에 '김종부 및 유자명 등과 공모하여 조선독립시위운동을 실행하려는 계획을 벌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계획을 모의했던 범바위는 현재도 존재하는 곳으로 호암·직동 주민센터 신승철로부터 확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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