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만세봉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만세봉은 잘 보존되어 있다. 만세봉 인근에 충민사 사당이 있는데 옥천군이 2002년 김순구와 항일애국지사 25인의 자주독립정신과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하동2길 107-12에 건립하였다. 마을 입구에 건립된 마을자랑비(1992년 8월 19일)에도 이와 관련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2008년 조사 때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다. |
| 정의 | 1919년 4월 8일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주민들이 횃불을 올리며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4.8 옥천군 군서면 만세봉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김순구(金舜九)/김교윤(金敎潤)/박내현(朴來賢) |
| 관련 내용 |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에 살던 김순구는 크게 감동받아 하동리에서도 만세시위 할 것을 결의하고 김교윤에게 마을 사람들을 4월 8일에 박내현의 집 부근 우물가로 모이도록 하였다. 주민 50여 명이 그곳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나서 마을 남쪽 산 위에 올라 횃불을 밝히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오동 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하여 이들을 해산시켰다. 이를 주도한 김순구는 3월 23일 청주 강내에서 조동식의 봉화만세운동에도 참여하였고, 3월 30일 미원장터시위에도 참가한 바 있다. 김순구는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0일 만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1991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김순구 판결문」(1919년 6월 18일 공주지방법원). 「密 第102號 其185; 第19號; [電報 : 전국 각지의 시위 상황]」, 1919년 4월 11일,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1. 「高 第11014號: 獨立運動에 관한 건(제44보)」, 1919년 4월 11일,『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 「朝特報 第10號: 騷擾事件에 관한 狀況(1919.4.6.-1919.4.15.)」, 1919년 4월 16일,『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 「騷擾事件의 後報, 충청북도 沃川, 산에 불 피우고」, 『매일신보』, 1919년 4월 11일. 金正明, 『朝鮮獨立運動』 Ⅰ, 原書房, 1967, 593~594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90~91쪽. 박걸순, 「옥천지역 근대의 기억과 독립운동가」, 『중원문화연구』24, 2016, 16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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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
|---|---|
|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산33-1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김순구 판결문」 및 『조선독립운동』 1권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2008년 현지조사 때 마을주민 모두 이곳을 만세봉으로 지목하여 장소를 확정하였으며 마을입구의 마을자랑비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만세봉 3·1운동 만세시위 관련기사(『매일신보』, 1919년 4월 11일)
만세봉 전경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한 김순구 등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2년 하동리에 건립된 충민사
하동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