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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정안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일본인 상인들의 상점 형태가 일부 남아 있지만, 대부분 당시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
정의 1919년 4월 1일 이기한 등의 주도로 공주군 정안면 면민들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4.1 공주군 정안장터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기한(李綺漢)/이병억(李秉億)/이동엽(李東燁)/정재철(鄭載哲)/문백룡(文白龍)/김정쇠(金正釗)/장기현(張基鉉)/정화순(鄭化順)/최범성(崔範聲)/윤원식(尹元植)/이월성(李月星)/원강희(元江熙)/김삼룡(金三龍)/이명보(李明甫)/이완용(李完用)/이돈석(李敦錫)/유고도(兪古道)
관련 내용 공주군 정안면 석송리의 이기한(李綺漢)과 이병억(李秉億)은 1919년 4월 1일 마을 주민들에게 독립만세를 고창하도록 호소하여, 이동엽(李東燁)·정재철(鄭載哲)·문백룡(文白龍)·김정쇠(金正釗)·장기현(張基鉉)·정화순(鄭化順) 등 주민 20~30여 명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면소재지인 광정리로 행진하였다. 이어 내송리에서 운궁리 주민 최범성(崔範聲)·윤원식(尹元植)·이월성(李月星)·원강희(元江熙)·김삼룡(金三龍)·이명보(李明甫)·이완용(李完用)·이돈석(李敦錫)·유고도(兪古道) 등 20명이 합세하였다.

광정리에 도착한 군중들은 정안장터로 이동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특히 일본인 정미소를 중심으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들은 주재소로 이동하여 삽과 곡괭이 등으로 건물을 파괴하며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이 시위로 이기한 등 25명이 체포되어 1919년 11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기한 등 23명이 징역 3년, 징역 1년, 징역 10월, 징역 8월, 구류 25일 등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참고 문헌 「이기한 등 25인 판결문」, 1919년 11월 1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1144~1154쪽.
김진호, 「공주지역의 3·1운동」, 『공주의 역사와 문화』, 공주대학교박물관, 1995, 384~386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광정리
주소 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278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이기한 등 25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의 증언으로 장터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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