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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귀래리 3·1운동 만세시위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산야
상태 변형 / 귀래리는 고청·평촌·새동말의 3개의 마을로 이루어진 곳으로, 옛 지명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평촌에서 새동말 방향의 도로를 따라 가면 좌측에 서상균 비석이 있다. 만세를 외쳤던 곳은 망곡례를 올렸던 언덕으로 되어있는데, 서상균 비석에서 마주보는 산으로 추정된다.
정의 1919년 4월 7일과 8일에 원주군 귀래리 주민 200여 명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4.7~8 원주군 귀래면 귀래리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현수(金顯洙)/김현홍(金顯弘)/서상균(徐相均)/이정년(李鼎秊)
관련 내용 원주군 귀래면 귀래리 주민들은 1919년 4월 7일과 8일 밤에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천도교 교인인 김현수(金顯洙)와 김현홍(金顯弘), 선비 서상균(徐相均)과 서당 훈도 이정년(李鼎秊) 등이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1919년 4월 7일에는 평촌 주민들만 모여 마을 앞 언덕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였고, 8일에는 평촌·고청·새동말 등 주민 200여 명이 고종 망곡례를 올렸던 마을 앞 언덕에 모였다. 김현수가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강연하고 난 뒤 모두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였다. 만세식이 끝난 뒤 운남헌병주재소에서 손석균(孫碩均) 등 헌병보조원들이 출동하여 시위참가자를 체포하였다. 이때 김현수와 김현홍은 체포되었고, 이정년은 자신의 고향인 제천으로 피신하였다. 서상균은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참고 문헌 「김현수 등 2인 판결문」, 1919년 5월 1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1971, 588~58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956쪽.
광복회 강원도지부, 『강원도항일독립운동사』 Ⅲ, 1992, 361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강원도 원주군 귀래면 귀래리
주소 강원 원주시 귀래면 귀래리 산 190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현수 등 2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곳 귀래리의 명칭은 현재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망곡례를 올렸던 곳의 정확한 위치는 찾을 수 없으나, 원주문화원 윤병진 사무국장의 증언에 의하면 서상균 비석을 마주보는 산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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