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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태인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멸실 / 당시에는 피향정 주변에 큰 규모의 장이 섰으나 해방 후 이전하였다. 도로가 개설되어 옛 장터의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다. 태성리 성황산 자락에 3·1운동기념탑(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51-1-9)이 있다.
정의 1919년 3월 16일 정읍군 태인면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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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현곤(金玹坤)/박지선(朴址宣)/김성수(金性洙)/송진우(宋鎭禹)/송한용(宋漢鏞)/최민식(崔敏植)/송진상(宋鎭相)/오석흥(吳錫興)/송영근(宋榮根)/송수연(宋洙淵)/송문상(宋文相)/김달곤(金達坤)
관련 내용 태인지역의 만세운동은 태인장이 열리는 1919년 3월 16일 전개되었다. 고종의 인산에 참례하기 위해 서울에 갔던 태인 출신의 김현곤·박지선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서울에서 전라도 출신의 김성수·송진우 등을 만나 3·1운동의 계획과 선언문 등을 미리 입수하고 고향에 돌아와 송한용·최민식·송진상·오석흥·송영근 등 지역의 유지들과 더불어 3월 5일 저녁 태흥리 송수연의 집에 모여 만세시위운동의 계획을 논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현곤은 비밀결사 ‘15회’를 조직하여 회장으로서 논의를 주도하였다. 7일에는 서울에 유학 중이던 송문상·김달곤이 이들과 합류하여 계획을 논의하고, 3월 16일 장날을 기하여 헌병대의 정오 타종을 기해 궐기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6일 정오 타종을 신호로 시장에 모여든 군중들은 송수연을 선봉으로 일제히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시위군중은 삽시간에 1,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헌병대와 주재소 등 기관으로 몰려갔으나 무차별 총격으로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고 송진상 등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징역 1년 6월형에 처해졌던 김현곤은 출옥 후에도 군자금모집 활동을 계속하였다. 한편 박지선은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으며, 송한용은 징역 10월형을 언도 받아 복역 후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을 유지하면서 군자금 7,000원을 전달하는 등 계속적으로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송진상은 8월, 오석흥은 6월, 최민식은 90대의 곤장을 맞았다.
참고 문헌 「김달곤 등 17인 판결문」, 1919년 5월 15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현곤 등 4인 판결문」, 1919년 7월 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병헌,『삼일운동비사』, 시사시보사출판국, 1959, 906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509∼511쪽.
전북지역독립운동추념탑건립추진위원회, 『전북지역독립운동사』, 신아출판사, 1994, 351∼353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 태성리
주소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 105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달곤 등 17인 판결문」과 「김현곤 등 4인 판결문」, 『삼일운동비사』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옛 장터의 위치는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송한용의 딸 송영순을 비롯한 여러 주민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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