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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군서면사무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당시 건물은 완전히 멸실되었고, 그 위치에 현재의 군서치안센터가 신축되었다.
정의 1919년 4월 10일 영암군 군서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 당시 군서면사무소 직원 등이 만세시위를 사전에 계획하고 선언서·태극기 등을 제작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4.10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조극환(曺克煥)/정학순(鄭鶴順)/최민섭(崔旼燮)/박규상(朴奎相)/조병식(曺秉植)/김재홍(金在洪)/최기준(崔琪焌)
관련 내용 영암군 영암면 출신의 조극환(曺克煥) 등은 1919년 3월 11일 영암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고자 하였으나, 사전에 계획이 발각되어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조극환은 정학순(鄭鶴順)·최민섭(崔旼燮)·박규상(朴奎相)·조병식(曺秉植) 등과 함께 4월 10일 영암 읍내와 군서면 구림리 두 곳에서 다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이후 조국환을 비롯한 군서면사무소 직원인 김재홍(金在洪)·정학순과 박규상·조병식·최기준(崔琪焌) 등은 4월 7일 밤 면사무소에 모여 등사판으로 조극환이 기초한 독립선언서 500매와 박규상이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문장(紋章) 50매를 제작하였다. 이들은 4월 9일 오전에 다시 면사무소에 모여 논의한 뒤 비밀서류의 인쇄를 위해 등사판을 외부로 반출하여 독립신문 500매와 독립가 100매를 제작하였다. 4월 10일 회사정(會社亭) 앞에서 시작된 구림리 만세시위에는 구림공립보통학교 학생들도 합세하였으며, 이들은 면사무소까지 행진하며 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날의 시위로 영암읍과 구림리의 주민과 학생 3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들 중 20여 명이 징역 2년형에서 5월형을, 5명이 태 90대의 형벌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참고 문헌 「조극환 등 25인 판결문」, 1919년 5월 15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조극환 등 10인 판결문」, 1919년 6월 2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조극환 등 3인 판결문」, 1919년 9월 1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605~607쪽.
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전라남도지』 8, 전라남도, 1993, 114~115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주소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51-14
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왕인로 497
위치 고증 「조극환 등 25인 판결문」 및 「조극환 등 10인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면사무소 위치에는 현재 영압읍내지구대 군서치안센터가 위치하고 있음을 군서면사무소 및 군서치안센터에서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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