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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공립보통학교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당시 건물은 완전히 멸실되었고, 그 위치에 현재의 영암초등학교가 신축되었다.
정의 1919년 4월 10일 영암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 당시 영암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사전에 준비하고 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4.10 영암군 영암면 독립만세시위/1919.4.10 영암군 영암공립보통학교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조극환(曺克煥)/정학순(鄭鶴順)/최민섭(崔旼燮)/박규상(朴奎相)/조병식(曺秉植)/최기준(崔琪焌)/김민규(金敏奎)/김봉근(金奉根)/김영언(金永彦)
관련 내용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영암군 영암면 출신의 조극환(曺克煥)·정학순(鄭鶴順)·최민섭(崔旼燮) 등과 군서면 출신의 박규상(朴奎相)·조병식(曺秉植)·최기준(崔琪焌) 등이 중심이 되어 1919년 4월 10일 영암 장날에 영암읍내와 군서면 구림리에서 동시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조극환은 3월 25일경 자신의 집에서 영암공립보통학교 학생 김민규(金敏奎)를 만나 만세시위에 대해 협의했다. 이후 김민규가 4월 상순 영암공립보통학교 교정에서 공립보통학교 학생 김봉근(金奉根)을 만나 거사계획을 논의하였고, 4월 8일에는 학생들과 함께 동교 기숙사에서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외 동교 학생 김영언(金永彦)도 4월 9일 동교 기숙사에서 학생들에게 4월 10일 정오 영암장터에서의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런데 4월 10일 아침 조선인 훈도들이 기숙사를 수색하여 태극기를 압수하였다. 그러나 김민규·김영언·김봉근 등은 포기하지 않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독려하며 학생들을 이끌로 장터까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시위로 영암읍과 구림리의 주민과 학생 3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들 중 20여 명이 징역 2년형에서 5월형을, 5명이 태 90대의 형벌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영암공립보통학교는 1898년 10월 사립 낭남학교(浪南學校)로 설립되었으며, 1908년 4월 영암공립보통학교로 인가받아 같은 해 6월 11일 개교하였다.
참고 문헌 「조극환 등 25인 판결문」, 1919년 5월 15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조극환 등 10인 판결문」, 1919년 6월 2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조극환 등 3인 판결문」, 1919년 9월 1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605~607쪽.
향토지편찬위원회, 『영암군향토지』, 전남문화사, 1972, 63~64쪽.
영암초등학교 홈페이지(http://www.yeongam.es.kr).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면 회문리
주소 전남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186
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영암초중고길 1
위치 고증 「조극환 등 25인 판결문」 및 「조극환 등 10인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영암공립보통학교 터가 현재 영암초등학교의 위치임을 영암초등학교 행정실에서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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