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해남공립보통학교 터 3·1운동 만세시위 준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원형보존 / 해남공립보통학교로 이용되었던 해남향교는 그대로 남아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6일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태극기와 선전문을 준비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김영휘(金永輝)/김규수(金奎秀)/김한식(金漢植)/임영식(任永植)/김명곤(金明坤)/이재실(李在實)·이준탁(李駿鐸) |
| 관련 내용 |
1919년 4월 6일 해남군 해남읍의 만세시위는 김영휘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김영휘는 사전에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 김규수에게 학생들을 규합하여 시위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규수는 1919년 4월 1일 학교기숙사에서 동료 학생들인 김한식·임영식 등과 만세시위를 논의하고, 김명곤·이재실(李在實)·이준탁 등과 함께 기숙사에서 4월 6일까지 태극기와 선전문을 준비하였다. 해남시장에서 군중들이 모이기를 기다려 여러 차례 만세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으나, 일제경찰의 경계가 심하여 계획대로 실행하지는 못하였다.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은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김규식은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았고, 김한식・임영식・박동렬 징역8월, 김현태 징역 7월, 신건희・윤옥하・박천홍 징역 6월, 윤준하 징역 4월형에 처해졌다. 김규식을 제외한 8명은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해남공립보통학교는 1911년 6월 설립되어 같은해 9월에 해남향교에서 개교하였다. 1921년 12월 객사를 이용하다가 1937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946년 4월 20일 해남동국민학교로, 1996년 3월 1일 해남동초등학교로 교명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 참고 문헌 |
「김규수 등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 1919년 5월 6일, 국가기록원 독립운동판결문컬렉션. 「조선총독부 전라남도 고시 제129호」, 1937.8.10., 『조선총독부관보』제3171호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3, 1971, 616~620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9, 1977, 290~291쪽. 해남군사편찬위원회, 『해남군사』, 해남군, 1995, 499~501·1405쪽. 『해남동초교백년사』, 2011 『해남신문』, 2007년 9월 17일, 「해남 3·1운동 주도한 고 김명곤 애국지사」. 해남동초등학교 홈페이지(https://hn-dong.es.jn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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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321 |
|---|---|
| 주소 | 전남 해남군 해남읍 향교길 20(수성리 105) 해남향교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김규수 등 판결문」에 관련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해남공립보통학교의 후신인 해남동초등학교의 『해남동초교백년사』에 1911년 9월 해남향교에서 개교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1918년 발행 1;50,000지형도를 통해 위치를 비정하였다. |














옛 해남공립보통학교 터(2023년 촬영)
옛 해남공립보통학교 터 전경(2023년 촬영)
옛 해남공립보통학교 터 전경(2023년 촬영)
해남공립보통학교 위치 변경 기록(『조선총독부 관보』, 1937년 8월 10일)
해남공립보통학교 관련기사(『동아일보』, 1927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