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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서부동 우시장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시장)
상태 멸실 / 현재 서부동 시장 터에는 일반 주택이 들어서 있고, 일부는 농지로 이용되고 있다.
정의 1919년 3월 13과 16일 의성군 비안면 주민들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3.12 비안공립보통학교 학생 독립만세시위/1919.3.12 의성군 비안면 쌍계동 독립만세시위/1919.3.13·16 의성군 비안면 서부동 시장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석근(金碩根)/임재호(林在虎)/박홍섭(朴洪燮)/박후도(朴後度)/김성수(金成守)/손동일(孫東一)
관련 내용 1919년 3월 12일에 일어난 비안공립보통학교와 의성군 비안면 쌍계동의 만세시위는 비안면 서부동과 동부동으로 퍼져나갔다. 3월 12일 비안면 동부동에 사는 김석근(金碩根, 이명 金石根)은 동부동의 임재호(林在虎)와 박홍섭(朴洪燮), 그리고 서부동의 박후도(朴後度) 등을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이들은 논의 끝에 '이미 우리 동포들이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도 그 뜻에 따라 운동을 함이 옳다.'는 결의를 다지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3월 13일 김석근은 태극기를 들고 서부동 시장으로 나가 40~50여 명의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 함성이 울리자 군중들이 점점 늘어 100여 명에 이르렀다. 밤늦도록 시장을 돌며 만세를 부르던 군중들은 김석근이 체포되자 해산하였다.

서부동 시장에서의 만세시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13일에 있었던 시위에서 검거를 피한 임재호·박후도·박홍섭 등은 다시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약속하였다. 이들은 3월 16일에 재차 서부동 시장에서 김성수(金成守)·손동일(孫東一) 등을 비롯한 군중 30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독립만세를 외친 후 해산하였다.

13일과 16일의 시위로 22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만세를 주도한 김석근·박후도·박홍섭·임재호는 징역 10월형, 김성수·손동일은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이외 15명의 마을 주민들이 태형 90도의 형을 언도받았다.
참고 문헌 「김석근 등 6인 판결문」, 1919년 4월 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석근 등 5인 판결문」, 1919년 4월 3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경찰요사』, 1934, 2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371~372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서부동
주소 경북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석근 등 6인 판결문」·「김석근 등 5인 판결문」 및 『독립운동사』 3권 등에 관련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의 서부동 시장의 위치는 마을주민 김치완(75세)의 증언을 통해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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