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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철성면 쌀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시장)
상태 멸실 / 고성읍 주민자치센터 외 여러 상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정의 1919년 3월 22일과 4월 1일 철성면민이 장날을 이용해서 만세를 부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3.22 고성군 쌀장터 독립만세시위/1919.4.1 고성군 쌀장터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안태원(安泰元)/문상범(文祥範)/김진만(金鎭萬)/서주조(徐周祚)
관련 내용 도쿄[東京]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다니면서 2·8 독립선언 당시 참여했다가 귀국한 고성군 출신의 안태원(安太元)과 고향에 돌아와 있던 부산상업학교 학생 서주조 등은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고성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1919년 3월 22일 안태원 등은 고성공립보통학교 학생 200여 명을 고성면 쌀장터로 이끌고 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는데, 학생들이 앞장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시가를 행진하며 시위를 벌이자 장터에 모인 사람들의 사기도 올랐다. 일본 헌병과 경찰이 급히 달려와 총검으로 학생들을 위협하고 주도 인사들을 검거하자 시위 대열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해산하고 말았다.

4월 1일에는 김진만·문상범 등이 고성면 장날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전개했는데, 쌀장터에 사람들이 모이자 김진만 등은 가지고 나온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어시장으로 향했다. 수백 명의 군중들이 이를 따랐는데, 시위 규모가 커지자 고성헌병분견소에서는 사천 일본군 헌병분견대의 지원군과 재향군인, 소방대원까지 총동원하여 총검을 휘두르면서 해산시키려 하였고, 심지어는 일본 상인들까지 엽총을 들고 나와 제지하였다. 이것을 보고 격분한 문상범은 일본 헌병에게 덤벼들었다가 총검에 맞아 어시장 안에 있는 샘물 터를 피로 물들이며 쓰러졌다. 그를 포박하여 끌고 가는 등 사태가 위태롭게 되자 군중들은 끓어오르는 울분을 억누르고 해산하였다. 이 만세시위로 김진만·문상범 등 중심인물들이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쌀장터는 조선시대에 객사가 있던 곳인데, 1900년의 화재로 객사가 소실되고 객사 뒷쪽에 있던 못이 메워지면서 그 자리에 5일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처음 독립만세가 제창되었던 장소에는 쌀을 비롯해서 나무 등을 판매하는 가게가 즐비한 곳이어서 쌀장터으로 불리웠으며, 해방 이후에도 시장으로 사용되었다.
참고 문헌 「고성군 철성면 성내동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6.
「朝鮮五万分一地形圖; 統營」, 조선총독부, 1926.
「김진만 등 2인 판결문」, 1919년 6월 14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남도경찰부,『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16쪽.
한국문화원연합회, 『경남지역3·1독립운동사』, 한국문화원연합회, 2007, 168~170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 성내동
주소 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리 72-42
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35번길 10-1
위치 고증 『고등경찰관계적록』과「김진만 등 2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시장의 위치는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에서 1926년에 간행한「朝鮮五万分一地形圖; 統營」에서 성내동에 시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고성군 철성면 성내동 지적원도」를 통해 지번을 확인하였다. 고성향토사연구소 소장 하기호씨의 증언으로 정확한 위치를 고증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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