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수곡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시장 |
| 상태 | 멸실 / 수몰되어 멸실되었다. |
| 정의 | 1919년 3월 25일 수곡면장 심호섭 등이 만세시위를 주도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심호섭(沈護燮)/김기선(金基宣)/정봉숙(鄭奉淑) |
| 관련 내용 |
심호섭(1891~1935)은 진주군 수곡면 3·1운동 지도자로 당시 면장이었다. 서울과 진주에서의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그는 진주로 달려가 독립선언서와 교유문을 입수했다. 그 내용을 토대로 스스로 격문과 교유문을 만들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수곡면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22일 수곡면사무소 앞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니 면민들이 당황하다가 곧 대열에 지어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출동한 일제 경찰이 심호섭과 함께 김기선·정봉숙 등을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하였다. 심호섭은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았다. 그후 심호섭은 1925년 경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과 나고야[名古屋] 등지에서 상애회(相愛會) 등 일본내 조선인 친일단체를 상대로 투쟁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만 44세가 되었을 때 고문 후유증과 옥에서 생긴 병이 악화되어 고생하다가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진주군 수곡면 창촌리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부, 1914. 「朝鮮五万分一地形圖; 丹誠」, 조선총독부, 1918. 조선헌병대사령부, 『 조선소요사건상황』, 1919, 108쪽. 한국문화원연합회, 『 경남지역 3·1독립운동사』, 경상남도지회, 2007, 34~35쪽. 추경화, 『 진주항일운동사』, 진주문화원, 2008, 266~269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진주군 수곡면 창촌리 308 일대 |
|---|---|
| 주소 | 경남 진주시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조선소요사건상황」에 수곡면에서의 의거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朝鮮五万分一地形圖; 丹誠」에 수곡장터가 표기되어 있다. 황인선(1928년 생)의 증언에 따르면 옛 장터가 홍수에 의해 사라졌다고 하므로, 「진주군 수곡면 창촌리 지적원도」와 현재 지적도를 대조하여 창촌교 아래 덕천강 일대를 장터로 비정하였다. |














수곡장터(「朝鮮五万分一地形圖; 丹誠」, 1918)
수곡장터(「진주군 수곡면 창촌리 지적원도」, 1914)
진주농민항쟁기념탑 - 수곡장터는 3·1운동 뿐만 아니라 1862년 진주농민항쟁의 무대이기도 했다.
수몰된 수곡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덕천강
창촌교